비즈 & 테크

뉴질랜드의 일론 머스크 피터 벡 그리고 로켓랩

허슬똑띠 2022. 6. 21.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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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호의 성공적 발사를 기원하며

 

일차 연기되었던 누리호의 발사가 6월21일로 예정되어 있다. 많은 난관을 극복해가면서 우리나라 우주산업의 선진화를 향해 꾸준히 전진하는 모습을 보며 이번에는 전 과정이 차질 없이 성공적으로 완수되기를 기원해본다. 이러한 것을 보다보니 한편으로는 참 쉽지 않은 로켓관련 사업을 손쉽게 성사시키는 듯 하는 외국의 민간 우주회사가 생각난다. 먼저 떠오르는 건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이지만 이보다 우리에게 비교적 덜 알려진 기업과 이를 일궈낸 사람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흙수저 출신이 만든 우주회사


일런 머스크의 스페이스엑스, 제프 베이조스의 블루 오리진, 리처드 브랜슨의 버진 갤럭틱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모두 다른 사업으로 이미 부자가 된 상태에서 우주회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1977년생인 피터 벡은 거의 맨땅에 헤딩하듯 출발하여 우주회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극명하게 다르다. 게다가 위 세 사람은 세계 최고 우주 강국인 미국에서 창업했으므로 훌륭한 기술은 물론 이 분야에 종사하는 인재를 비교적 손쉽게 구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지원할 금융시스템도 충분한 환경이었다. 이에 비하면 피터 벡의 시작은 모든 상황이 정반대였었다.

 

피터 벡은 남반구 뉴질랜드 최남단의 인버카길이라는 인구 5만명의 작은 도시 출신이다. 그가 고등학교 때 자신의 장래희망은 우주로 날아가는 로켓을 만드는 것이라고 적어냈다가 진로 담당 선생님으로부터 '네 꿈은 정해진 진로 교육에서 벗어난 것이기 때문에 그 진로는 달성하기 불가능하다.'라는 말씀을 들었다. 웬만한 사람 같았으면 선생님의 이런 말씀을 듣고 그런 꿈을 계속 꾸겠는가? 하지만 그는 그러하지 않았다. 비록 뉴질랜드에선 꿈을 이룰 수 없어보였지만 말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피터 벡은 대학을 가는 대신 직업을 선택했다. 피셔앤패이켈이라는 뉴질랜드 가전제품 회사의 견습공으로 입사하여 기계를 다루는 법을 배우면서 그의 꿈을 키워갔다. 그는 일이 끝나면 퇴근하지 않고 회사 장비를 이용하여 로켓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후 정부연구소에 입사하게 되었고 직장일과 병행하여 자신이 만들어보았던 것보다 더 큰 로켓을 만들기 위한 연구를 계속해 나갔다.

제1차 도약대 뉴질랜드 재벌 틴달


피터 벡이 30살이 되었을 때 운명적인 만남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운명을 바꿔놓은 사람인 뉴질랜드 최대 유통재벌인 더웨어하우스의 창업자이자 뉴질랜드 2위 부자인 스티븐 틴달과 조우한 것이다. 틴달은 당시 연구소에서 일하던 피터 벡을 만났는데 그의 아이디어를 듣고 투자를 해주기로 결심하였다고 한다. 피터 벡은 어떻게 이 거부와 꿈을 함께할 수 있었을까? 처음 피터 벡을 알아보고 투자한 스티븐 틴달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뛰어난 과학자들에게 많이 투자했지만 투자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피터 벡은 투자자들에게 자신의 꿈을 설명하는 타고난 재주(knack)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유튜브에서 피터 벡의 영상을 보면 그는 말을 잘 할뿐 아니라 유머감각도 뛰어난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다른 사람이 내 꿈을 함께 하도록 만들고 싶다면 내 꿈을 그에게 잘 '전달'해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일깨워주는 사례이다. 이렇게 해서 피터 벡은 2006년 로켓랩을 창업하였고, 2009년 처음으로 관측용 로켓을 아주 높이까지 발사하는데 성공한다. 당시 로켓의 길이는 6m 무게는 60kg에 불과했다고 한다.

실리콘밸리 VC들을 통한 제2 도약

 

로켓랩 로고

로켓랩을 세운 피터 벡의 비전은 명확했다. 작고 가벼운 화물을 우주 궤도까지 쏘아 올릴 수 있는 로켓으로 소형위성 로켓시장을 선도하겠다는 것이었다. 화물이 작을수록 로켓을 만드는 비용도 그만큼 싸지고, 발사 난이도도 낮아지기 되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달로 인해 위성의 크기도 점점 작아지므로 이런 작은 위성을 우주로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고객으로 삼는다는 계획이었다. 당시 위성 발사는 대형업체들이 독점하고 있어서 작은 위성을 쏘아 올리려면 큰 화물에 얹혀야 했으므로 작은 회사들은 자리를 확보하기가 사실상 어려웠다. 그런데 미국정부의 각종 민간 우주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면 미국에 본사를 둔 기업이어야 했기 때문에 로켓랩은 미국 정부를 고객으로 하기 위해서 2013년 본사를 미국으로 옮기게 된다. 기존의 성공적인 발사 성적이 없는 로켓랩 입장에서는 미국 정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건 중요한 트랙레코드(Track Record)가 될 수 있어서다. 뉴질랜드 정부의 지원을 받아온 로켓랩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생산시설, 연구시설, 발사대 등 고용이 창출되는 시설은 그대로 뉴질랜드에 두기로 하면서 이를 성사시켰다. 미국으로 본사를 옮기는 과정에서 로켓랩은 실리콘 밸리의 유명 벤처캐피털인 코슬라벤처스의 투자를 받게 된다. 미루어 짐작하건데, 아마도 이 VC는 스티븐 틴달이 소개시켜준 것으로 보인다. 로켓랩의 성장에 뉴질랜드 정부도 많이 참여했지만 사실상 로켓랩을 키운 투자자들은 대부분 실리콘밸리 VC들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
트랙레코드(Track Record) : 기계에 기술개발 결과물 및 제품을 장착 적용해 실제 작업조건과 운용환경에서 일정 시간 확보한 운용 데이터를 말한다.

 

나스닥 상장

 

이후 로켓랩은 차례차례 미션을 수행해간다. 2014년 '일렉트론' 로켓을 공개하였고 이어서 2015년 NASA와 소형위성 발사계약을 맺는다. 2017년 첫 테스트 발사에 실패했지만 2018년 테스트 발사 및 상업용 발사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2019년에는 로켓 재사용에 성공하면서 2021년에 나스닥에 상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피터 벡은 22년 8월 5억4500만달러(약 6300억원)의 자산가가 되었다.

현재 로켓랩은 민간부문에서 스페이스X 다음으로 가장 많은 위성을 우주로 보낸 회사인데, 21번 발사를 했고 105개의 위성을 우주로 보냈다.
로켓랩의 발사비용은 발사 당 750만 달러다. 우리 돈으로 약 86억원이면 인공위성을 우주로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로켓랩의 성공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인구가 우리나라 10분의 1 정도에 불과하고 제조업 기반도 미약한 뉴질랜드를 '민간 로켓 강국'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또한 뉴질랜드의 젊은이들에게 많은 일자리와 꿈도 주었다. 더 중요한 것은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이조스처럼 억만장자가 아니더라도 민간 투자를 받아서 로켓회사를 만들 수 있다는 롤모델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로켓산업을 쉽게 생각하면 오산이다. 최근 로켓랩을 모델로 해서 시작한 로켓회사들(아스트라, 파이어플라이 등)의 첫 발사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로켓랩 기술의 우수함이 더 부각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성공의 배경


피터 벡이 이렇게 성공할 수 있게 요인을 분석해보면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그에게는 명확한 꿈과 비전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와 함께 로켓을 만드는 방법과 어떤 사람을 데려와야 하는지도 매우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다.
둘째, 그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았었는데 이는 그의 강한 설득력이 크게 작용하였다. 뉴질랜드에서는 투자를 받기도, 인재를 구하기도, 로켓 제조를 위한 소재를 구하는 것 모두가 어려웠지만 뉴질랜드 정부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미국으로 본사를 옮기고 난 후에는 투자자들로부터 심지어는 나사도 자신을 너무 잘 도와줬다고 피터 벡은 회고하고 있다.
셋째, 커뮤니케이션이다. 로켓랩같은 경우 모든 발사과정을 유튜브로 공개했고. 더불어 피터 벡은 수시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회사와 자신에 대한 믿음을 고양시켰다고 할 수 있다.


참고 자료 : 미라클레터(21년9월 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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