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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의맹시(無注意盲視)와 터널비젼(Tunnel Vision)

by 허슬똑띠 2022.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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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의 맹시의 문제점은 너무 자주 일어난다는 게 아니라 무주의 맹시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데 있다.

어느 한 가지에 집중하면 다른 것은 인식하지 못하는 현상을 무주의맹시라고 일컫는다. 집중할 때 주의를 분산시키지 않으려는 뇌의 특성으로 인해 나타난다. 인간의 주의력에 한계가 있다는 뜻으로, 운전 중 전화를 하는 행위 등이 위험할 수 있다는 근거가 된다. 무주의 맹신을 인정하지 않는 시각적 확신은 오히려 판단을 그르치게 만들 수 있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크리스토퍼 차브리스(Christopher Chabris, 1966~)와 일리노이대학의 대니얼 사이먼스(Daniel Simons, 1969~)는 농구공을 패스하는 두 팀이 나오는 짧은 동영상을 만들었다. 한 팀 학생들은 흰색 셔츠, 한 팀 학생들은 검은색 셔츠를 입게 했다. 동영상 시청자들에게는 흰색 셔츠를 입은 팀의 패스 횟수를 세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동영상을 시청하는 학생들이 몰입과 집중을 하는 동안, 고릴라 복장을 한 한 학생이 코트를 가로질러 천천히 걸으며 가슴을 두드리는 등의 행동을 한다. 무려 9초 동안. 그런데, 동영상을 보면서 패스 횟수를 세던 수천 명의 학생 중 절반 정도는 고릴라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은 고릴라가 등장하지 않았다고 우기기까지 했다.

이른바 '투명 고릴라 실험'으로 알려진 유명한 연구 결과다.
이런 종류의 실험은 우리가 스스로의 지각력에 대해 터무니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음을 드러내준다.
실험에서 나타난 현상을 가리켜 'inattentional blindness'라고 하는데 1992년 아리엔 맥(Arien Mack)과 어빈 록(Irvin Rock)이 만들었다. 우리말로는 '무주의 맹시', '부주의맹', '시각적 맹목성' 등으로 번역해 쓰고 있다.
이 실험 결과는 '운전 중 전화통화'의 위험성을 시사해준다. 핸즈프리 전화기(hands-free phone)를 쓰면 안전할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차브리스와 사이먼스는 "문제는 손이나 눈에 있지 않다."고 말한다.
"문제는 운전 행위에 따르는 한계가 아니라 주의력 자원과 인지가 갖는 한계다. 사실 정신을 산만하게 한다는 점에서 손에 드는 전화기나 핸즈프리 전화기는 거의 차이가 없다. 같은 방식, 같은 정도로 정신을 산만하게 한다. 거듭되는 실험에서도 손에 드는 전화기보다 핸즈프리가 더 낫다는 사실을 하나도 발견할 수 없었다."
우리가 전체를 한번에 다 보지 못하는 현상을 잘 이용하는 것이 바로 마술이다. 마술사들의 손이 우리의 눈보다 빠르기 때문에 '속임수'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무주의 맹시는 그간 세속적 진리로 통용되어 온 "Seeing is believing(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 즉 "말로만 백 번 듣는 것보다 실제로 한 번 보는 것이 낫다"는 속설에 함정이 있으며, 따라서 위험할 수도 있다는 걸 시사한다. 문제는 무주의 맹시의 발생이 아니라 그걸 인정하지 않는 우리의 시각적 확신이다.

무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로 인해 생기는 문제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터널 비전(tunnel vision)'이다. '터널 시야'라고도 한다. 터널 속으로 들어갔을 때 터널 안만 보이고 터널 밖은 보이지 않는 것처럼 주변을 보지 못한 채 시야가 극도로 좁아지는 현상을 뜻한다. 영화관에 들어가 자기 자리를 찾을 때 아는 사람을 쉽게 지나친다거나 누군가 머리 모양을 바꾸고 나타나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도 바로 '터널 비전' 탓이다.

데이비드 맥레이니(David McRaney)는 '무주의 맹시'는 '터널 비전'이 피할 수 없는 현실임을 보여주었다며 이렇게 말한다. "뭔가에 집중하면 세상을 보는 시야가 열쇠 구멍만큼 좁아지지만 편안한 마음을 가진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일 만큼 시야가 넓어지진 않는다. 당신은 보통 주변을 무시하거나 뭔가 다른 것에 대해 생각한다."

터널 비전은 비유적으로도 많이 쓰인다. 즉, 사람들은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다 다룰 수는 없기 때문에 문제를 단순화하기 위해 메시지의 일부분에만 선택적으로 주의를 집중하는 것을 가리켜 터널 비전이라고 한다. 사람이 흥분하면 눈에 보이는 게 없어지고 주의력과 정보처리 능력이 급격히 저하되는 것, 재판에서 2심이 밝힌 무죄 근거를 1심은 보지 못하는 것 등은 모두 터널 비전 탓이다.

몰입은 축복일 수 있다. 자연, 사물, 일 등에 몰입하는 것만큼 재미있고 유익한 게 또 있을까. 그러나 인간관계에서 몰입은 축복일 수 있지만 재앙일 수도 있다. 스토킹은 바로 몰입의 산물이다. 인터넷시대의 '빠' 문화와 '까' 문화도 마찬가지다. 특히 갈등 상황에서 몰입은 자해(自害)를 초래하는 매우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몰입은 무엇보다도 균형 감각을 잃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족)


무주의 맹시의 문제점은 너무 자주 일어난다는 게 아니라 우리가 무주의 맹시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데 있습니다. 도리어 우리는 우리 앞에 펼쳐진 온 세상을 본다고 믿고 있습니다. 인간의 눈은 비디오카메라가 아니죠. 따라서 인간의 기억 또한 비디오가 아닌 것입니다.
과학 작가 이은희씨는 이에 대해 잘 지적하고 있습니다. '모든 걸 다 볼 수 없다고 인정하는 자세'를 가질 때에 비로소 '서로 시각이 다른 현실에서 내 눈으로 본 것만이 옳은 것이라며 핏대를 세우고 서로를 헐뜯는 일'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요. "내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니까!" 우리는 절대 움직일 수 없는 확신을 갖고 이런 말을 하지만,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것에 대해선 어찌 할 것인지 우리 모두 자문자답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이렇게 무주의맹시의 맹점을 인식한다면 좁은 터널비젼에 의해 또는 착시로 인해 빚어지는 오해와 갈등은 훨씬 줄어들 수 있을 거라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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