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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분야의 잡다한 지식

거짓말

by 허슬똑띠 2022.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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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은 우리의 일상?

 

우리는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거나 혹은 반대로 의도하지 않게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또는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순간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가하면 아예 거짓말을 밥 먹듯 하고 사는 사람도 있다. 구태여 여기서 밝히지 않아도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어릴 때부터 도덕교육이나 윤리교육을 받으면서 그토록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건만 말이다. 특히 종교적으로는 더 위협적으로(?) 듣고 살았다. 어찌 보면 이게 세상살인가 보다 느껴지기는 하지만 나라라는 조직도 쉽게 근절시키지 못하는 피싱이 횡횡하는 걸 보면 기분이 씁쓰레해질 수밖에 없다. 일단 어찌할 수 없는 인간 속성 때문이라 치부하고 거짓말이란 게 도대체 무언지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거짓말에도 좋고 나쁜 게 있다.

 

우선 종교적 관점에서 보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거짓말을 세 가지로 분류한다. 유용한 거짓말(타인에게 이익을 주는 거짓말), 농담에 사용되는 익살스런 거짓말 그리고 악의적인 거짓말이다. 그러면서 무서운 죄에 속하는 것은 악의 있는 거짓말뿐이라고 주장했다. 거짓말은 본질적으로 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거짓말의 죄는 그 거짓말이 의도하고 있는 목적에 따라 더 무거워지기도 하고 더 가벼워지기도 한다. 어떤 사람이 거짓말을 함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고자 하는 악의 있는 거짓말이라면 이 경우 죄는 더 무거워진다. 반면에 어떤 선 즉 좋은 것을 베풀고자 하는 거짓말인 경우 그 죄는 가벼워질 수도 있다. 의도된 선이 즐거움이면, 익살스러운 거짓말이라 불리며 의도된 선이 다른 사람을 돕거나 어려움으로부터 구하려는 것이면, 유용한 거짓말이라 한다. 이처럼 모든 거짓말은 세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그런데 종교적 관점에서 볼 때, 자기가 하느님으로부터 이 세상을 구원하라는 명을 받았다면서 스스로를 신에 버금가는 존재로 부각시키며 신도들을 홀리는 행위 같은 거짓말이 가장 무거운 죄가 아닐지.

 

일상적인 관점에서의 거짓말 분류

 

거짓말은 다음과 같이 다르게 분류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는 세기의 거짓말이다. 히틀러가 집권한 후 그의 의도를 알아보기 위해 영국수상은 히틀러를 만난다. 영국수상은 히틀러와 대화하면서 그로부터 전쟁확대 등의 위협적인 느낌보다 부드러운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히틀러가 끔찍한 세계대전을 일으키리라는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히틀러의 세기적 거짓 인상에 넘어간 결과가 아닐까? 이런 세기적인 거짓 때문에 세기적 재앙이 초래되었을 수도 있다.

이 거짓말은 뭐 그다지 해로운 것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지만 그래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 같아 꺼내본다. 아메리카 대륙을 콜럼버스가 처음으로 발견했나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는 단지 중남미 섬 중 하나에 도착해서 여기가 인도일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이런 거짓 - 아니 거짓이라기보다 진실을 호도라고 하는 게 옳을지도 모른다. - 이 어떤 나쁜 영향을 미치지는 않겠지만 거짓은 거짓이다. 역사가가 한번 그렇게 적어 놓으면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 고질성이 있다. 이게 나쁜 영향이라면 나쁜 것일 수도 있겠다.

 

다른 하나는 습관적 거짓말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양치기소년과 늑대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아시다시피 이 거짓말은 모든 사람으로부터 신뢰를 저버리게 되어 끔찍한 결말을 맛볼 수 있다. 멍청하게 느껴지는 얄팍한 거짓말이다. 그런데 의외로 이런 얄팍함에 넘어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일례로 상습사기꾼은 머리가 뛰어나게 좋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그의 생각대로 주변이 움직이도록 만드는 재주를 가진 사람인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들은 당장은 괜찮은 사람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결국 자기 꾀에 스스로 넘어가 범죄자의 낙인을 찍히는 신세로 전락하는 운명을 맞이한다.

 

마지막으로 선의의 거짓말이다. 선의와 거짓말이 상충하는 아이러니한 말이지만 사실 이런 상황은 자주 연출된다. 예로서 '나이보다 아주 젊어 보이시네요. (실제는 그다지 젊어 보이지 않는다.)' 또는 '그 옷 정말 잘 어울리시네요. (보는 사람마다 견해가 다르며 약간 그렇게 보일 뿐이다.)' 등의 다소 입에 발린 듯 여겨지는 말이다. 물론 상대방이 그렇게 느껴지지 않게 말하는 게 필요하다. 그런데 타인에게 굳이 진실을 말해서 기분 상하게 하는 것보다 훨씬 좋지 않을까? 심지어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거짓말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이것도 자주 쓰면 역효과가 나므로 주의해야한다.

 

그러면 이런 경우는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함께 강도를 모의했던 범인들 중 한사람이 모든 죄를 다 뒤집어쓰고 홀로 중형을 선고 받는데, 이유는 공범 중 한명이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아내가 있었고 아내의 치료비를 마련하려고 이 범행에 억지로 참가하게 되었던 것이다. 나름 선의의 거짓으로 봐줘도 되지 않을까?

 

거짓말을 하지 않고 솔직해져야 할 때

 

한편으로는 거짓말보다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다면서 조지 워싱턴의 예를 드는 경우가 있는데 이에 대해 다른 관점으로 보자. 인간 됨됨이에 대해 이야기할 때 흔히 조지 워싱턴과 같은 솔직함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참된 요점이 간과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 요점이란 조지가 그의 아버지에게 자기가 벚나무를 도끼로 찍어 넘겼다고 하면서 자기는 거짓말을 못한다고 말했다는 것이 아니라 불과 일곱 살의 소년이 그런 상황에서 총명함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나이에 걸맞지 않게 현명한 소년이었다.

 

생각해보자. 조지는 깜찍하게도 상황증거가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즉 아버지가 찍혀 떨어진 나무 조각을 보고 이것의 크기로 보아 큰 도끼 자국이 아니며 따라서 어른이 그렇게 찍어 넘기지는 않았으리라는 것을 알게 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는 아버지가 농장 곳곳에 사람들을 보내 도끼를 가진 소년을 찾아보게 할 것이란 것까지 알아차렸던 것이다. 그러니 그를 총명하다고 말할 수밖에. 그 때문에 조지는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자진해서 자백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그의 아버지가 소년 조지에게 거짓말을 하기보다는 천 그루의 벚나무를 찍어 넘기는 게 차라리 낫다고 말하면서 크게 기뻐했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넌센스가 아닐 런지. 단지 아들이 거짓말을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은 것에 엄청 놀랐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게 맞지 않을까? 이 일화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아무리 선의의 거짓말을 하게 되는 상황일지라도 꼭 그 거짓말이 통할 것인가의 여부, 그리고 그게 자신에게 긍정적 효과를 가져 올 런지를 먼저 판단해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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