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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과 열정 DREAM

우리 형 (2)

by 허슬똑띠 2022.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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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만약 이 다음 어느 생엔가 내가 오늘의 너처럼 쓸쓸히 죽어 누워있으면,

 

그러던 어느 날 우리 동네에 젤루 쌈 잘하던 깡패 같은 녀석이 형을 괴롭히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녀석은 형 하구 나이가 똑같았는데 질 나쁘기로 소문난 녀석이었다. 나는 형에게 빚진 것도 있던 만큼 형을 위해서 그 자식과 싸웠다. 싸우다가 보니 그 녀석의 코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원래 애들 싸움은 먼저 코피 나는 쪽이 지는 것인지라 나는 기세등등하게 그 녀석을 몰아 부치기 시작했는데 형이 갑자기 나를 말리는 것이었다. 나는 한참 싸움이 재미있던 판에 형이 끼어들자 화가 버럭 났다. 하지만, 지은 죄가 있던 지라 아무 말 하지 않고 물러서고 말았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 후로 그 깡패 녀석과 형이 아주 친해지기 시작했다. 형은 사람을 아주 편하게 해주는 구석이 있었다. 사실 나는 형의 그런 면이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런 면 때문에 내가 어머니한테 귀여움을 더 받지 못 받고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형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세 번째 수술을 받았다. 그 후로는 입술위에 반창고 붙이는 짓은 그만두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말더듬는 버릇은 잘 고쳐지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나는 다시 형에게 버버리란 말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TV에서 ''''언청이''''란 말을 처음 듣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는데 얼마 후에 그 말이 바로 우리형과 같은 사람을 뜻하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그런 희귀한 단어를 알게 된 게 참 신기했다. 그리고 며칠 후 형에게 버버리 대신 언청이라는 말을 썼다. 그 말을 들은 형은 마치 오래전부터 그 말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담담한 표정으로 듣고 있더니 내 머리에 꿀밤을 먹이면서 "그 말을 이제 알았구나?" 하며 웃어주었다. 왠지 그런 형에게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어 형에게 다시는 언청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나도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니었나보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다닐 적 어버이날이었다. 학교가 파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어머니가 방안에서 소리 없이 울고 계시는 모습을 보았다. 무슨 편지 같은 걸 읽으시면서 울고 계셨다. 어머니는 잠시 후 그 편지를 조금은 초라하게 생긴 핸드백안에 넣으셨다. 나는 어머니가 방을 나가신 후 몰래 들어가 그 핸드백을 열어 보았다. 그 안에는 조금 빛바랜 편지봉투부터 쓴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편지까지 있었다. 나는 어머니가 지금 막 읽으셨던 듯한 편지를 꺼냈다. 형이 쓴 편지였다. 형이 매해 어버이날마다 썼던 편지를 어머니는 그렇게 모아놓고 계셨던 것이었다. 편지 내용을 읽어보고는 나는 왜 그토록 어머니가 형을 사랑하고 형에게 애정을 쏟고 계셨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사실 그때 나에게는 어머니의 형에 대한 사랑이 집착으로 느껴졌었다. 만약 내가 형처럼 태어났다면 나는 나를 그렇게 낳은 부모를 원망하고 미워했을 텐데 형은 그 반대였다. 오히려 자기가 그렇게 태어남으로 해서 걱정하고 마음 아파하셨을 어머니에게 용서를 빌고 또 위로하고 있었다.

 

어느덧 한해가 또 지나고 형은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 다음해 나도 중학교에 올라갔는데 한집에서 살고 있음에도 형과 나는 다른 학교를 배정받았다. 형은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항상 1등을 했다. 나도 공부를 꽤 잘하는 편이었는데 항상 형보다는 조금 못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형이 일기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끔씩 형의 일기를 훔쳐보곤 했는데 형은 시인이었던 것 같다. 형이 지은 시는 이해하기가 참 쉬웠다. 교과서에 실린 시들처럼 복잡한 비유나 은유 같은 것도 없었고 아무리 무식한 사람이 읽어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을 그런 시를 많이 썼다. 그런데, 읽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눈물 한 방울이 맴도는 그런 시들이었다. 나는 형이 썼던 시들을 참 좋아했던 것 같다. 형의 영향으로 나는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쌍밤'''' 이라는 문학써클에 가입하게 되었다. 연합써클이라 여학생들도 참 많았다.

 

한집에 사는데도 불구하고 중학교는 형과 다른 곳을 다녔는데 고등학교에서는 형과 한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나는 또 고등학교 때 갑자기 키가 부쩍 자라 형보다 10cm는 더 크게 되었다. 게다가 나는 얼굴도 어디를 가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잘생겨서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나는 형이 불쌍했다. 키도 작지, 그렇다고 얼굴이 잘생겼기를 하나, 말을 잘하나, 형을 보며 나는 무언가 우월감 같은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거에 형은 전혀 무감각했다.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어느 맑은 가을날이었다. 집을 나서는데 참새 한 마리가 대문 앞에 죽어 있었다. 나는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서 착한 일 한답시고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나왔다. 참새를 쓸어 담아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했다.

그때 형이 대문을 나왔다. 나는 형이 칭찬을 해줄 것으로 알고 잔뜩 기대했는데 형은 모처럼 착한 일 하려고 하는 나를 만류했다. 그러더니, 손수건을 꺼내 그 죽은 새를 담더니 집뒤의 야산으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나는 학교에 늦을까봐 미리 집을 나섰다. 형은 그날 지각을 해서 운동장에서 기합을 받았다. 팍팍한 다리를 두드리며 올라오는 형에게 참새는 어떻게 했냐구 물어보니까 뒷산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고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참새를 묻고 나서 기도를 했다고 했다. 나는 내심 그깟 죽은 참새 한 마리 땅에 묻고 나서 기도는 무슨 기도냐며 생각했다가 그래도 궁금해 형에게 뭐라고 기도했냐고 물었더니 형은 슬픈 얼굴로 대답했다.

‘'만약 이 다음 어느 생엔가 내가 오늘의 너처럼 어느 집 앞에 쓸쓸히 죽어 누워있으면 그때는 네가 나를 거두어주렴.'

 

형은 고등학교 2학년 겨울에 또 수술을 받았다. 정말 그놈의 수술은 끝이 없는 것 같았다. 어머니 말로는 형의 수술비로 집 한 채 값이 날라 갔다고 한다. 우리 집은 가난했었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일 년에 두 번씩 이사를 다녔다. 우리집 을 가지는 게 소원이었다. 거기다가 형의 수술비까지 대느라 언제나 쪼들렸다. 아버지가 벌어 오시는 것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어머니는 언제부터인가 돈놀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셨다. 쉽게 말해서 고리대금업 이었는데 어머니는 악착같이 돈을 모으셨다. 채무자들을 어쩔 때는 참 심하다싶게 몰아 부치시기도 했다. 부동산에도 손을 대셔서 지금 있는 집도 장만하시고 그러셨다. 어머니는 참 지독하셨다. 그리고 너무 돈에 집착하고 그랬다. 극장도 한번 안가셨다. 극장가서 영화볼 돈 있으면 차라리 맛있는 걸 사먹는 게 났다는 주의셨다.

그런 어머니를 보며 형은 항상 마음 아파했다. 자기 때문에 어머니가 저렇게 되셨다는 것이었다.

 

형은 어머니에게 누가 될 만한 일은 한 번도 해본 일이 없었다. 적어도 내 기억에는 그랬다. 하지만, 그런 형에게도 어머니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하나 있었다. 형은 거의 돈을 쓰지 않았는데 그런 형도 돈을 쓰는 곳이 한군데 있었다. 길에서 거지를 보면 없는 돈에도 항상 얼마씩을 주고는 했다.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내가 옆에서 아무리 저런 사람들 도와줘봤자 하나 소용없는 짓이라고 설교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런 형에 대해서 어머니에게 고자질하면 어머니는 형을 참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는 하셨다. 돈이라는 게 얼마나 피나게 모아야하는 건데 저러느냐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형에게 항상 무서운 세상에 대해서 말하시곤 했다. 그러시면서, 말끝머리에는 항상 이런 말을 붙이셨다.

"너는 공부 못하면 시체야."

형은 시체가 되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했던 것일까? 그랬던 것 같지는 않다. 지금까지 형이 자기 자신 때문에 뭘 걱정하는 걸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 다음해 겨울 우리 집에 경사가 하나 났다. 형이 대학에 합격한 것이었다. 그런데, 형은 서울의 좋다하는 대학을 다 마다하고 지방에 있는 P공대를 지망해서 합격했다. 나는 참 알 수가 없었다. 서울이 얼마나 놀기가 좋은데 그 외진 데까지 찾아가는 지 이해가 안 되었다. 형이 서울을 떠나던 날,. 나는 그때까지 어머니가 그렇게 많은 눈물을 보이시는 건 처음 봤다. 형이 떠난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손수건이 눈에서 떨어지지를 않았다. 그런 어머니가 보기 싫어 그날은 혼자서 시내를 배회하다가 집에 돌아 왔다.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형이 없어지니까 집안이 텅 빈 듯한 느낌이 들었다. 형은 자주 편지를 썼다. 그리고 어버이날마다 선물을 들고 집에를 찾아오곤 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형은 어머니 생일날에는 선물을 하지 않았다. 꼭 어버이날 그렇게 선물을 들고 오고는 했다. 참 아직까지 말하지 않은 게 하나 있는데 형하고 어머니는 생일이 같다. 어머니말로는 예정일을 보름이나 당겨서 태어나면서 어머니의 생일에 태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띠까지 같았다. 그렇게 되기도 참 힘들 거 같은데 어쨌든 형하고 어머니는 전생의 인연이 참 깊었었나보다. 형은 어머니 생일날 태어난 걸 항상 어머니에게 미안하게 생각했다. 즐거워야 할 어머니의 생일날 자신이 그렇게 끔찍한 모습으로 태어나 어머니를 슬프게 한 것이 그렇게 마음에 못이 되었었나보다. 그러고 보니 형에게는 백일 사진도 없고 돐 사진도 없다. 언젠가는 형이 어버이날 어머니 선물로 비싼 지갑을 사온 적이 있었다. 어머니도 참 그 선물을 보시고는 대뜸 하신다는 말씀이 "지갑은 벌써 하나 있는데 가서 다른 걸루 바꿔올 수 없나?" 그런 말을 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형은 그저 빙그레 웃기만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후 그 지갑을 항상 곁에 지니며 다니셨다. 마치 형의 분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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