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한 수학계산식에 담긴 의미
"너 오늘 저녁 술 한잔 할 수 있어?"
다른 부서에서 일하고 있는 친한 입사동기가 전화로 물어왔다. 마침 술 생각이 있었던 참이라 흔쾌히 승낙했다. 그렇게 해서 간만에 둘이 자주 가던 바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십여 년 전의 일이다.
술자리에서 일상이야기부터 시작하다 회사업무가 주제로 떠올랐고 결국은 그가 일하는 부서의 한 직원이 술안주로 도마에 오르게 되었다. 그가 말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같은 부서에서 일하고 있는 양대리라는 친구는 그보다 나이가 두세 살 어렸지만 남보다 일찍 초등학교에 들어간 데다 군 면제를 받아 동일한 직급을 가지고 있었다.
한데 그래서인지 그는 유난히 건방을 떨었고 유세도 심한 편이었다. 나이 따위는 개무시하고 오히려 부려먹으려 들 정도였다. 수시로 가스라이팅을 해대는 그를 보면, 혹시 소시오패스 기질을 가진 인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조차 들 정도였다고 했다. 한데 그의 행패(?)를 견디기 어려울 지경에 이르러 상사에게 부서를 옮겨줄 것을 요청하기로 마음먹었다. 곧이곧대로 상황을 이야기하기는 자존심이 상해서 못하겠고, 구차하지만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아서라는 사유를 대기로 했다. 그전에 타부서에 있던 친한 입사동기인 나에게 부서이동에 대한 타당성과 좀 더 설득력 있는 사유에 대한 자문을 구하기로 했단다.
술이 거나해지다보니 울분이 터져 올랐는지 자연스레 그의 목청이 커졌다.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며 상황설명을 듣고 난 나는 도리어 목소리를 낮추어 '거참 괘씸한 놈이네!' 리며 일단 그의 말에 장단을 맞추어 위로해주었다. 그런 다음 '지금 기분으로는 별로 내키지 않겠지만 내가 말하는 걸 한번 참고 들어봐 봐.'라고 진정시키는 어조로 말하고 나서 '기분을 삭힐 겸해서 문제를 하나 낼 테니 좀 머릴 굴려봐!'라고 주문했다. 그건 마침 얼마 전에 마음 다스리는 법에 대한 강좌에서 듣고 마음에 꽤나 깊은 울림을 받았던 것이었다.
제시한 것은 생각하고 자시고 말 것도 없는, 초등생도 우습다고 할 수학 문제였다. 다름 아닌 (5-3=2)와 (2+2=4)라는 계산식인데 응당 모를 바가 없을 것이나 요지는 이 수식이 가지고 있는 속뜻이 무엇이냐는 거였다. 그는 머리를 굴리는가 싶더니 이내 포기하고 설명을 재촉했다.
"기본 뜻은 나중에 말하기로 하고 네가 처한 상황에 맞추어 변형시킨다면... 상대방의 오만함(5)도 그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삭이고, 삭이고, 삭이면 즉 세 번(3)을 삭여 빼버리면 이해(2)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야."
그는 약간 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네 심정으론 싶게 받아지지 않을 거야. 하지만 끝까지 들어보고 되씹어봐. 그 다음 (2+2=4) 란 이해(2)와 이해(2)가 모일 때 사랑(4)이 된다는 뜻이야. 다만 지금 너의 상황에 대입해서 본다면 사랑이란 동료애라 하겠지. 자꾸 이해를 하다보면 모든 분노를 갈아낼 수 있다는 거다. 이는 그가 저지르는 만행을 온전히 이해만 하라는 것은 아니고 필요한 때는 그냥 무반응으로 개무시 하라는 거야. 그러다보면 본인도 무안하게 여겨지게 될 것이고 횟수가 거듭 될수록 강도가 약하게 되지 않겠냐는 뜻이지 뭐. 결과적으로 서로를 대치하게 만들었던 악감정도 풀리게 되고 말이지."
그러면서 이것이 갖는 본래의 뜻에 대해 부연 설명했다.
(5-3=2)란 어떤 오해(5) 라도 세 번(3)을 생각하면 이해(2)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본래의 뜻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을 오해할 때가 있고 역으로 오해를 받기도 한다.
오해는 대개 잘못된 선입견, 편견 또는 이해부족에서 발생하며 결과적으로 오해는 잘못된 결과를 가져온다.
그래서 아무리 큰 오해라 할지라도 세 번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다는 풀이가 멋지지 않은가?
(2+2=4)는 그렇게 이해가 되어 이해와 이해가 모이면 사랑이 된다는 말 역시 새기면 새길수록 깊은 뜻이 느껴진다.
영어로 "이해" 를 뜻하는 'understand'는 분해 해보면 '밑에 서다.' 라는 의미인데 '그 사람 입장에 서서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이 곧 이해'라는 것을 잘 설명해주는 것 같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사랑은 이해인지도 모르겠다. 따뜻한 이해와 이해가 모일 때 우리는 그걸 '사랑' 이라고 부르는 게 아닐까?
그 뒤로 친구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궁금했는데 인사이동이 있자마자 그로부터 이후의 상황설명을 들었다.
그는 그때 내말을 듣다보니 역설적이게도 술기운이 내말을 감성적으로 새기게 만들었던 것 같다고 했다. 이후 문제의 직원 양대리를 평범하게 대하려고 노력하면서도 그의 행동과 말이 다소라도 비합리적이라고 생각되면 철저하게 무시하고 넘어갔다. 그러자 그의 짜증이 심해졌고 결국 자진해서 타부서로의 이전을 요청하여 결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족)
본래 이 수학계산식을 말해준 의도대로 두 사람 모두에게 좋은 방향으로 상황이 마무리 된 것은 아니어서 좀 아쉽기는 했습니다. 그래도 어쨌든 친구가 그만큼이라도 잘 처리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죠. 아마 모르긴 몰라도 양대리란 친구도 느낀 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사실 아무리 몸에 좋은 약일지라도 제대로 먹지 않는다면 그 효과는 미미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수학계산식이 내포하고 있는 깊은 뜻을 보다 진지하게 받아들여 서로와 서로를 가로 막고 멀찍이 떨어뜨려 놓는 오해를 따뜻한 이해로 풀어버린다면, 이 세상을 정말 살 만한 분위기로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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