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감성과 열정 DREAM

사람의 원초적 욕심을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아보자

by 허슬똑띠 2022. 8. 25.
728x90
반응형

 


사람의 욕심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탐욕과 성욕 그리고 식욕입니디. 얼핏들으면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듯 합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욕심을 자신의 성공발판으로 삼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즉 이들을 긍정적인 열정으로 전환시킨다면 무궁무진한 힘을 가져올 수 있을 것입니다.

째, 물욕, 재물욕, 승부욕, 성취욕, 그리고 성공욕 등을 망라하는 탐욕입니다.

 


탐욕은 탐애라고도 하며 자기가 원하는 것에 욕심을 내어 집착하는 것, 자기의 뜻에 맞는 일에 집착하는 것, 정도를 넘어서서 욕심을 부리는 것, 명성과 이익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것 등이 모두 이에 해당합니다. 한데 이런 것들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탐욕이 아니라 그것이 정도를 지나칠 때 탐욕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면에서 탐욕이라는 말은 거부감을 느끼게합니다.

하지만 탐욕의 근본은 청부와 건부(건강한 부)를 이루는 원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흙수저에서 부자가 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심심치 않게 강한 동기부여를 제공하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욕심을 있는대로 부려가면서 초라하게 느끼는 감정을 부자가 되겠다는 승부욕으로 승화시켰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때문에 이른 나이 때부터 이 욕심을 자기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이는 바로 독기입니다. 모든 일을 하는데 있어서 이런 독기가 필요합니다. 이 독기가,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 외치며 미치도록 노력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이를 통해 적극성이 길러지며 이는 원하는 것을 차례차례 만들어가게 해줍니다.

또한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신에게 구원을 요청만 하지 않고 스스로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탈진한 힘을 충전시켜주면서 노력을 배가하도록 도와줍니다. 물에 빠져서가 아니라 물에서 빠져나오려는 노력이 부족해서 익사한다는 것을 통렬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어쩌면 이런 걱정을 할지도 모릅니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샤일록과 같은 사람처럼 악랄하게 부를 축적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욕심에서 형성된 독기를 열정으로 승화시켜 놀라운 성공을 이룬 소박한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영어를 포함하여 모든 과목에 대한 공부를 덜렁덜렁해서 실력이 형편없던 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가 어떤 계기로 공부하겠다고 독기를 품고 토익공부를 시작한 지 2개월 만에 950점을 딜성했고 후에 토익관련 책까지 펴내 화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공부를 시작하면서 그는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아예 읽고 듣는 모든 것을 통째로 잡아 머리에 집어넣으려는 것처럼 집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강의도 두 번 이상 반복해서 들었고 강의를 마치면 그걸 그날에 모두 복습했던 것입니다. 독기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죠. 과거의 잘못에 대한 통렬한 복수심의 발로이기도 했습니다. 여러분도 한 번쯤 이런 복수심과 독기로 하고자 하는 일을 해보심은 어떨지요.

둘째 성욕입니다.

 


성욕이 시대를 불문하고 기본적인 삶에 깔려있는 이유는 그것이 식욕이나 수면욕처럼 작용해서가 아니라 사회, 애착, 관계 등 모든 것에 연결되는 바로 그 긴밀성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런 면이 성욕을 성취욕과 연계시킬 수 있는 근거라 하겠습니다. 인간은 나이가 들면서 성욕이 급감하게 됩니다. 이와 함께 성취욕이나 진취성 역시 삭아드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만일 젊은 나이에 이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겠습니까. 때문에 이를 관리하는 게 중요하며 이는 건강유지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음식섭취에 신경을 많이 써야한다는 말도 됩니다.

왕성한 성욕은 사랑함에 있어서 무척 열중하게 만들어 상대가 신뢰감을 갖도록할 뿐더러 모든 면에서 자신감을 충만시켜주고 몰입하도록 만듭니다. 성욕이 중요한 점은 이처럼 바로 자신감입니다. 그렇다고 이를 바람을 피우는 엉뚱한 것에 쓴다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병적인, 넘치는 성욕인 섹스홀릭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만일 그런 경향을 보인다면 이를 치유하여 한 사람에만 열중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뜨거운 사랑의 열정에 대한 집중도를 높이도록 한 다음 일에 대한 열정으로 전환되도록 해주야 합니다.

성욕이 왕성하다고 해서 이게 꼭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방향성의 문제인 것으로 판단됩니다. 성욕을, 사는대로 생각한다는 식으로 활용해서 카사노바처럼 사용한다면 아무리 성욕이 강하다할 지라도 성공적인 삶과 건강을 얻기란 쉽지 않습니다. 굳이 실명을 거론하지 않아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을 테지만, 엄청난 부를 쌓거나 권력을 쥐었던 사람들 대부분은 그에 비례하는 성욕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여기에서 제시하는 성욕의 힘에 대한 주장을 반증한다고 봅니다. 따라서 성욕을 왕성하게 유지, 증진시키고 여기에서 분출되는 열정을 집중력에 쏟아붓도록 해보십시오.

셋째 식욕입니다.

 


식욕의 근원은 배고픔입니다.
그래서 식욕을 밥맛 또는 입맛이라고도 합니다. 식욕은 논리적으로 설명하자면 물질대사의 요구를 유지하기 위하여 적절한 에너지 섭취를 관리하도록 하는 일이라고 정의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은 이 배고픔을 어떻게 활용하느냐 입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갈망하거나 더 많은 것을 원할 때 '아직도 배고프다'라는 표현를 쓰는데 바로 이런 적극적인 감정을 이용하자는 겁니다.  

먹거리가 풍부해지면서 왕성한 식욕을 걱정거리로 치부하는 경향이 많아졌습니다. 비만을 유도한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하지만 식욕상실은 의욕상실, 심지어 죽음을 의미합니다. 나이드신 분들의 경우 밥 냄새 맡기조차 싫다면서 거부하는 때부터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다고 합니다.

인간은 먹는 것을 쟁취하는 일의 역사라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다른 동물 역시 마찬가지지만 인간만이 이를 슬기롭게 해결하면서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거지요. 한데 풍부한 먹거리를 가지게 되면서, 이는 아직도 한정된 사람들에 국한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괜히 식욕을 탓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식욕을 탓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잘못 처신하고 있음에 대해서는 깨닫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깨닫는다고 해도 행동을 잘 하지 않습니다. 이는 식욕의 문제를 탓해서 해결될 것은 아니지 않은가요?

이미 언급했듯이 식욕의 상실은 퇴보의 시작점이라고 여기셔야 합니다. 나이가 많신 분들과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서요. 허약해진 몸에서 의욕이 생기기는 어렵습니다.

(사족)


무욕심과 욕심 (0과 1의 차이)
0은 어떤 숫자를 곱해도 0입니다. 다시 말하면 가능성이 0이면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다는 뜻이죠. 즉 무욕은 꺼진 불과 같아 거기에 불쏘시개를 아무리 집어넣는다 한들 무언가를 이루어보려는 정열의 불을 지필 수 없게 됩니다. 반면에 1은, 여기에서는 단순히 하나라는 의미보다 소유를 의미합니다. 즉 욕심을 부린다는 뜻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1은 어떤 숫자를 곱하느냐에 따라 무한대로 뻣어나갈 수 있습니다. 얼마만큼 노력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성공의 크기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이죠. 이게 욕심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입니다. 일단 그 욕심이 지저분하냐 아니냐는 논외로하고 말입니다.

다만 0에 대해서는 다르게 해석도 가능합니다. 0이 모든 것을 0으로 만드는 무서운 것이라는 점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무한대의 힘을 펼칠 수 있다는 역설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안 되는 이유만 찾는 사람들이 새겨 들어야할 말이 있습니다.
"안될 이유가 있으면 반드시 될 이유도 있다. 다만 안 되는 이유는 백 만가지 이지만, 되는 이유는 딱 한 가지라는 사실이다. 현명함이란 바로 단 하나의 될 이유를 찾아내는 능력이다."
안 되는 이유의 다른 원인은
인내심이 부족하며 하기 싫어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내 적성에 안 맞아서,
내 재능으로는 안 되는 일이라며 변명하기에만 바쁩니다.
남의 성공을 따라하기 전에 이렇게 오작동하게 만드는 것은 없는지 먼저 살펴봐야 하겠습니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