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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의 진 (고사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

by 허슬똑띠 2022.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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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背水)의 진(陣)은 강을 등지고 펼친 진이라는 뜻으로서

통상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이 말은 한신의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한나라 유방이 왕위에 오르기 2년 전에,

명장 한신은 유방의 명에 따라 조나라로 쳐들어갔다.

그러자 조나라에서는 20만 대군을 끌어 모아

조나라로 들어오는 정형이라는 곳의 좁은 길목에 성채를 짓고

방어선을 펼친다.

이 때 한신의 병력은 겨우 1만 명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정상적으로 싸워서는 이길 가능성이 없었다.

그래서 한신은 날랜 기병 2,000명을 선발하여

붉은 깃발을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는 조나라 군대의 성채 근처 산등성이로 보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일 싸움에서 우리 본진은 일부러 패한 척하고 퇴각할 것이다.

이를 보고 적은 성채 문을 열고 추격해 올 것이다.

그때, 너희들은 그 틈을 노리고 성채를 습격하여 점령한 다음 한

나라의 붉은 깃발을 올려라.“

그리고 한신은 나머지 8천명의 본진으로 강을 등지고 진을 쳤다.

이것이 배수의 진이다.

 

이 밝고 한나라 군사들이 조나라 군대에 공격을 가하는 척 한 후

일제히 퇴각하여 강가에 진을 친 부대에 합류했고

조나라는 퇴각하는 한신의 군대를 추격한다.

강을 등져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한신의 군대는

어쩔 수 없이 필사의 각오로 싸웠다.

얼마 후 성채에 한나라의 붉은 깃발이 펄럭이기 시작했다.

2,000여명의 기병대는 성채를 점령하고 한나라 깃발을 세운 것이다.

그 순간 조나라 군대는 혼란에 빠졌고

앞뒤에서 공격을 당하여 궤멸되어 버렸다.

전투가 끝난 후, 축하연 때, 장수들이 한신에게 물었다.

"병법에는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며 싸우라 했는데(背山臨水),

어떻게 장군은 물을 등지고 승리를 장담할 수 있었습니까?“

이에 한신은 웃으며 대답했다고 한다.

“이 방법도 병법에 있다.

너희들이 이를 주의 깊게 보지 않아서이다.

병법은 '사지에 빠진 연후에야 살고,

궁지에 놓인 연후에야 남는다.'라고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배수의 진이라는 말 때문에 한신이 등장하였는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에게는 유방과 천하를 양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알아보자.

 

한신은 어떻게 출생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중국역사에서 전쟁의 신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한신은 어렸을 때, 매우 가난했고

막장인생을 살았다고 알려진다.

진나라 말 항우가 군사를 일으키자 그에 가담했지만,

미천한 신분으로 인해 한직을 머무르게 된다.

이에 한신은 자신의 능력을 알아보는

유방의 진영에 가담하게 된다.

이후 유방의 책사 소하의 천거로 대장군까지 올랐으며

한나라 군대를 이끌고 모든 전투를 승리로 이끈다.

특히 1만의 군대로 20배가 많은 조나라의 군대를

배수진을 통해 쳐부순 것과

이 전투에서 이좌거를 부하로 얻게 되는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이후 한신은 제나라를 굴복시키며

자신을 제나라 왕에 임명해달라고 유방에게 말하였고,

유방은 급한 대로 한신을 왕에 임명했으나

이일은 한신이 토사구팽 당하게 되는 빌미가 되었다.

한신이, 유방, 항우와 삼분천하(三分天下)를 할

실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그가 유방에게서

독립하지 아니한 이유에 대하여

부인지인(婦人之仁, 아녀자의 약한 마음)"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참고) 부인지인(婦人之仁)은 리쭝우가 지은

후흑학(厚黑學)이라는 책에서 나오는 말로

아녀자의 인(仁)이라고도 하며

아녀자의 인자하고 허약한 마음이라는 의미다.

이는 바로 마음이 시커멓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와 함께 쓰이는 말로 소인배의 혈기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얼굴 즉 낯짝이 두껍지 못하다는 말을 이른다.

 

또한 한신이 주관적으로

삼분천하를 준비할 결심이나 의지가 없었고,

정치적인 식견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이 꼭 맞는 답은 아닐 것이다.

당시의 상황으로 봐서는 한신이 시국을 잘 살펴보았지만,

유방을 벗어나서 독자세력을 구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포기했을 가능성이 더 클 지도 모른다.

여기서 참고해봐야 할 것은

한신의 유객인 괴철(괴통이라고도 한다.)이라는 인물이다.

 

괴철은 한신에게 유방을 벗어나서

독자세력을 구축하도록 권유했던 인물이다.

그가 한신을 설득하면서 내세운 것은 다음 네 가지이다.

첫째, 초한이 3년이나 서로 대치하고 있지만

아무도 이기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한신의 군사력은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다.

한신이 한의 편을 들면 한이 이기고,

한신이 초의 편을 들면 초가 이기게 되어 있는 상황이다.

둘째, 사람은 욕심이 많고 마음은 예측이 어려우므로

유방을 믿는 것은 위험하다.

셋째, 전투능력과 용감함이 주군(왕 즉 유방)보다 뛰어난 자는

몸이 위험하다.

이는 공이 너무 커서 천하를 뒤덮는 경우에는

내릴 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넷째, 좋은 시기는 얻기는 힘들지만,

잃어버리기는 쉬우므로 주저해서는 안 된다.

그의 말은 아주 논리적이었고 예도 적절했으므로

한신의 지혜로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한신은 괴철의 말을 듣고 나서도 한참을 망설였다.

그런 다음 최후의 결정은 유방의 휘하에 남는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한신이 우유부단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하지만 한신은 상승장군으로 절대 결단을 내릴 때

주저하는 나쁜 습관은 없었다.

 

한나라 고조 유방

다른 편으로는 한신이 유방으로부터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이를 배신할 수 없었다고도 한다.

그래서 후세에서는 이를 두고

한신의 '부인지인'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 한 것은

한신이 항우가 패하에서 유방에게 참패를 당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을 두고

아녀자의 인과 소인배의 혈기 때문이라고 갈파한 바 있는데, 그

말이 자신에게도 그대로 적용된 점이다.

그런데 사실 여부가 밝혀진 바는 없으나

한신의 곁에는 유방의 첩자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어

이를 한신이 느끼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두고두고 남은 의문이 있다.

한신은 한고조 유방과 천하를 양분할 수 있었던 기회 앞에서,

즉 자신의 생사가 달린 문제 앞에서는

배수의 진을 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왜 괴철의 간언을 헌신짝 버리듯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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