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여성의 파워
먼저 우리나라사회는 부계중심사회였을까 아니면 모계중심사회였을까를 따져보자. 이론적으로 분석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모계가 강했던 사회였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모계중심사회라는 게 인류가 정착하기 전 이리저리 떠돌아다닐 때로 생각하는 분들은 뭔소리냐 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모계란 말 그자체로 여성 자신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있다. 즉 모계라는 것을 곧이곧대로 여성을 지칭한다기 보다는 어머니의 일족, 바로 여성이 속한 남성을 중심으로 한 혈족집단이 더 정확하다고 볼 수있다. 이 말은 결혼한 여성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일족을 대표하여 다른 일족과 연결하는 이를테면 사절과 같은 존재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다른 나라의 경우와는 달리 우리 역사를 보면 어느 한 세력이 강해 다른 세력들을 억누르고 통합하여 하나의 집단을 이룬 예는 거의 없다. 신라만 해도 그 출발은 사로 6촌의 연합세력이었고, 가야는 망할 때까지 여러 가야의 연합세력으로 존재했었다. 고구려 역시 계루, 소노, 절노, 순노, 관노의 다섯 부의 연합에 의해 시작되었다가 주몽에 이르러야 계루부가 왕위를 독점하게 되었던 것이다. 특히 백제는 망하는 그 순간까지 왕과 호족이 서로 으르렁거리며 견제하고 있었으니 말할 것도 없다.
특히 주목할 점은 한국민족의 주류가 형성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고려의 건국이다. 고려를 건국한 태조는 송악 호족 중 하나인 왕씨일족의 왕건이지만, 실제 왕건을 받들어 고려를 건국하게 된 것은 궁예에 반대하여 결집한 주로 송악의 호족집단을 중심으로 한 일단의 호족들이었다. 이미 지방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던 기득권세력이었던 이들이 왕건을 왕으로 추대한 데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신라 왕의 버려진 자식이라고 알려져있지만 사실 어디서 굴러먹다 왔는지도 모를 파계승보다는 그들과 공통적인 이해를 나누고있으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보다 잘 보장해 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는 왕건을 선택하는게 당연히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 강화하는데 도움이 될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겠는가. 왕건 또한 왕으로 추대되먼서 혼인을 통해 이들 호족들과의 결속을 강화했었다. 말하자면 고려라고 하는 나라는 왕건과 왕건이 비로 맞이한 스물아홉 명에 달하는 여성들의 출신 호족들과의 결합에 의해 건국되었다 할 수 있다고 말할 수있다. 이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통상적으로는 어느 강력한 정복자에 의해 새로운 나라가 나타난다. 중국의 역사가 대체로 그렇다. 하지만 우리역사는 그런 전례가 거의 없다. 즉 고려라는 나라 그 자체는 어느 강력한 정복군주에 의해 정복을 통해 세워진 나라가 아니었던 것이다. 왕은 단순히 호족의 대표자였고, 따라서 왕의 권위와 권한 가운데는 호족의 지분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상징하여 나타내는 존재들이 바로 왕건의 비로 들어가 있던 여자들이었다. 그들은 왕건에게 있어서는 호족에 대한 인질인 동시에, 호족들에게 있어서는 고려라는 나라와 고려의 왕에 대한 자신들의 지분을 상징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나아가 왕건이 죽고 후계구도를 둘러싼 대립이 격화되면서 이들은 왕실의 문제에 개입하기 위한 창구 역할을 하게 되었다. 즉 이들 호족들이 각각 자신과 연고가 있는 왕자들을 후원함으로써 왕위계승을 둘러싼 분쟁은 호족들의 대리전 양상을 띄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혼란을 종식시킨 것이 또 고려의 광종이었다. 그의 강력한 개혁정책으로 말미암아 고려의 왕권은 비로소 호족들로부터 독립하게 된다.아무튼 이러한 과정에서, 강력한 정복군주에 의해 정복되어 일방적으로 복종만을 바치는 경우와는 달리 여성들은 그 자신을 통해 자신의 일족을 대표하는 역할까지 부여받게 되었다. 한 남자의 아내이지만 그 전에 아버지의 딸이고, 오라비의 누이이며, 조카들의 고모이기도 하게 된 것이다. 그러자면 당연히 친정 식구들과의 일족으로서의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친정의 성을 그대로 써야 할 필요가 있겠지 않았을까? 아마 이러한 예로 가장 대표적인 것이 조선 영조의 며느리이자 정조의 어머니이며 사도세자로 더 유명한 장헌세자의 빈이었던 혜경궁 홍씨였을 것이다. 그녀는 분명 장헌세자의 빈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결국 선택한 것은 남편인 장헌세자가 아닌 친정의 홍씨 일문과 그들이 속한 노론 벽파였다. 그래서 세자가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일찍 죽으면 평생을 독수공방하며 뒷방 늙은이로 늙어갈 것을 알면서도 가문과 당파를 위해 장헌세자를 죽음으로 몰았던 것이다.어디 혜경궁 홍씨 뿐일까? 요즘 드라마로 유명한 정순왕후 김씨라든가, 세도정치를 이끈 안동김문의 순원왕후 김씨나, 고종의 양어미가 되는 풍양조문의 조대비, 고종의 비이기도 한 명성왕후 민씨 등도 역시 한 남자의 아내이자 한 나라의 국모라는 상징적인 위치보다는 그들이 나고 자란 가문과 그 가문이 속한 정파의 이익을 더 우선했던 이들이었다. 거슬러 올라가서는 최초의 세도정치라 할 수 있는 윤원형의 전횡을 만들어낸 문정왕후 윤씨 역시 그 가문을 더 우선했던 사람이었다.
한편 서양에서 여성이 남성의 성을 따라 쓰는 것은, 약탈혼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여자는 어디까지나 남자의 소유물이었고, 여자에게는 그저 남자에게 복종하고 아이를 낳아주는 이상의 다른 것은 요구되지 않았다. 당연히 그러한 여성을 통해 무언가 지분을 요구하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것이었고. 결혼을 통해 서로 혼맥으로 연결할 수는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가문과 가문, 그 가문의 일원과 일원 사이의 일이지, 감히 여자가 끼어들 문제가 아니었다. 따라서 이러한 문화에서 여자는 강자에게 주는 그냥 하나의 선물이었다. 당연히 굳이 여자가 친정의 성을 유지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어 전통사회는 전혀달랐는데 이유를 들자면 지금까지 언급했던 묘한 연결고리때문이었다. 달리 표현하자면 일찌감치 정치 및 사회의 여러 제도와 문물들이 정비되어 약탈혼과 같은 풍습이 발붙일 수가 없었다. 이외에 안정된 만큼이나 오랜 세월 동안 지역에 뿌리를 내려 영향력을 행사해 온 토착세력들의 힘 역시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바로 그러한 일족과 일족의 결합이었던 탓에, 결혼이라는 것이 유럽에서처럼 어느 일방이 다른 일방은 소유하거나 그런 관계이기는 힘들었다. 결혼을 통한 이익을 서로 공평하게 분배한다는 차원에서, 그리고 여전히 대등한 존재로서 긴장을 유지한다는 의미에서, 그래서 결혼하고도 여자로 하여금 친정의 성을 쓰게 만든 것이다. 말하자면 결혼하고도 남편의 성이 아닌 친정의 성을 따르는 것은, 여전히 그 여자의 소속과 소유권은 친정에 있다고 하는 구속의 의미라 할 수 있겠다.
여자가 남편의 성을 따르지 않기는 중국과 일본도 비슷하기는 했다. 다만 차이가 있는 것이, 중국에서 결혼한 여자를 부를 때 공식적인 호칭은 남편의 성을 따 그 뒤에 "부인"을 붙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인의 성이 유씨라 해도, 마씨인 남편과 결혼했으면 그 호칭은 마부인이 되는 거다. 일본은 아예 여자에게는 성이 주어지지 않았는데, 기록을 보더라도 여자에게 성이 부여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집안의 성이 그것이니 호조 마사코니, 오다 이치니 해서 관습적으로 성을 붙여 부를 뿐 대개는 그 이름만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바로 그러한 이유로 여자에게 따로 성이 부여되지 않은 것이 근대 이전에는 일본에서도 여자도 별성을 썼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여자들이 성을 갖게 된 것은 메이지유신 이후이며, 유럽을 따른답시고 여자들에게 남편의 성을 따르도록 했던 것이다
(사족)
장황하게 주저리 주저리 늘어 놓았지만, 사실 이처럼 길게 쓸 것도 없는 이야기이지 싶다. 우리나라 여자가 결혼하고서도 외국처럼 남자의 성을 따르지 않는 이유는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모계가 강해서였다고 판단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사회는 전통적으로 모계 즉 어머니의 일족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여성 그 자체보다 여성이 속한 남성을 중심으로 한 혈족집단이 강했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런 저런 논리를 다 제껴두고 우리사회는 실제 여성의 권한이 매우 컸었다는 점도 사유가 되리라고 본다. 그래서 곳간의 열쇠를 여성인 부인이 가지게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건 정말 사족인데 남자의 성씨를 따르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문제를 떠나 우리 사회가 갈수록 현대화 되면서 우리나라 여성들의 기는 엄청나게 세어지고 있음을 느끼지 않는가? 단적인 예로 나이들면서 부인에게 휘어잡혀 사는 남정네들이 않다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뭐 유리천정이다 뭐다 하면서 여성의 인권이 개선되려면 아직 멀었다고 주장한다면 고거도 일리가 있음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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