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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질서에 대한 변화의 조짐 (1)

by 허슬똑띠 2022.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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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로달러

페트로 달러에 대한 거대한 도전


달러가 곧 금이라는 믿음이 생기게 된 이유


중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흔들려고 하려는 달러는 글로벌 표준 화폐다. 어느 나라를 가건 환전 수수료가 진짜 저렴하다. 또한 어느 나라에서든 달러는 받아준다. 그러면 달러가 이러한 위상을 갖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먼저 지폐가 언제부터 돈이라는 믿음을 갖게되었는지  확인해보자. 1867년 유럽 통화회의에서 열강들이 금본위제도를 도입하기로 결정하면서부터 이  믿음이 생긴 것인데 이는 지폐를 언제든지 금으로 교환할 수 있도록 했기때문이다. 즉 태환지폐가 탄생된 것이다. 그 전까지는 금화나 은화가 유통이 됐지만 분실의 위험이 있다 보니, 중앙은행에 금을 쌓아두고 그 금 가치만큼 화폐를 유통하기로 한 것이 금본위제인 것이다. 하지만 세계 대전이 터지고 대공황이 벌어지면서 각국들은 돈을 더 많이 찍어내야 했는데 보유하고 있는 한정된 금의 양이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1944년 미국 주도로 브레튼우즈 체제가 성립됐다. 미국만 금을 달러와 연동하고, 다른 나라들의 통화는 미국 달러와 바꾸는 방법을 통해 간접적으로 금과 연결시키는 방식이었다. 금 1온스당 가격이 35달러였으므로 미국이 35달러를 발행하려면 금 1온스를 보관해야 했다. 이때부터 달러는 곧 금이라는 믿음이 생긴 것이다.

붕괴되는 달러와 지키려는 사람


하지만 1960년에 접어들면서 미국은 무지무지하게 많은 돈을 썼다. 베트남 전쟁을 필두로 미국이 엄청난 돈을 써야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물론 그때까지도 미국은 포트 녹스(Fort Knox)에 군사들이 2만톤에 달하는 금을 매일 지키고 있다면서 자신만만하게 “걱정하덜 마슈!”라고 외쳐대고 있었다. 그런데 이 때 누군가가 손을 들고 이렇게 외쳤다.
"미국이 프랑스에 지고 있는 부채를 금으로 갚아줘. 달러 말고. 미국에 실물 금괴가 없는 것 같아!" 이는 바로 프랑스 대통령인 드골이었다. 하지만 금으로 바꾸어 주기 곤란했던 미국의 닉슨정부는 당혹할 수 밖에 없었다.

달러의 수호자 헨리 키신저

 


어쩔 수없이 미국은 1971년 일방적으로 달러를 금으로 바꿔줄 수 없다고 선언하게 된다. 이는 세계적인 패닉이나 다름 없었다. 그 때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이 천재적인 아이디어를 냈다. 키신저 장관은 사우디아라비아로 날아가 한 협정을 맺게된다. “원유를 거래할 때는 무조건 달러로만 결제를 한다. 대신 미국은 사우디를 군사적으로 보호해준다.” 이게 주효했다.
어떤 나라든 석유 없이는 살지 못하는데 그 석유를 달러로만 살 수밖에 없게된 것이다. 이후 달러는 사실상 석유에 연동(?) 됐는데, 이를 페트로 달러라고 지칭한다.

페트로 달러에 대한 도전 움직임


이렇게 오랜동안 페트로달러의 위상이 지속되었으나 최근 사우디가 “중국에 원유를 수출할 때 위안화로도 결제하는 방안을 논의 하겠다”고 발표함으로써 충격을 주고있다. 물론 사우디의 엄포는 미국을 향한 외교용일 가능성이 크기는 하다. 또 달러 가치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폭락할 것이라고 결코 생각되지 않음도 마찬가지다. 달러의 힘은 20조9400억달러 라는 세계 1위 GDP를 보유한 미국 경제에 그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고 중국 GDP는 14조7200억달러로 아직 미국에 미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다만 니얼 퍼거슨 스탠포드대 교수가 진단한 것처럼 달러의 균열은 어쩌면 디지털 화폐에서부터 시작될 수도 있다. 헌재 중앙은행들과 일반 은행들의 외환 거래 방식은 매우 복잡하고 긴 중개 절차를 갖고 있는데, 이를 간파한 중국이 적극적인 디지털화폐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는 말이 떠돌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럴 가능성도 농후하다. 반면 도입 검토가 가장 더딘 국가는 미국이다. 그래서 퍼거슨 교수는 “전체주의 경쟁자들과 경쟁에서 승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능가하는 혁신이다.”라는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또한 "이미 존재하는 현실과 싸운다고 변화를 일으킬 수는 없다. 무언가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기존의 모델을 구식으로 만들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라."라는 미국의 발명가 버크민스터 풀러의 명언처럼, 국가 경쟁력도 혁신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닐런지.

(참고)


건축가 · 공학기사 · 발명가 · 철학자 · 저술가 · 지도제작자 · 기하학자 · 미래주의자 · 교사 · 시인이었던 풀러는 20세기 후반에 가장 독창적인 사상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명성을 쌓았다. 그는 아마 '인류가 우주에서 성공하도록 하기 위해' 지구를 토대로 포괄적 · 장기적인 기술 · 경제 계획을 개발하려고 시도한 최초의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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