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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턴트 라면은 누가 만들어 냈을까?

by 허슬똑띠 2022.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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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의 라면 소비국은 중국이지만

1인당 라면 소비량으로 따지면

1년 평균 68개인 한국이 최고다.

적어도 1주일에 한두 번은 라면을 먹는 셈이다.

그만큼 우리는 라면을 좋아한다.

이런 인스턴트 라면은 어떻게 세상에 나오게 되었을까?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일본의 오사카에서 일이다.

패전국 일본 국민들 대다수는 미군이 제공하는 밀가루로 연명했다.

이를 감안해본다면 국수 장사로 큰돈을 벌 수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폐허가 벌판에 자리 잡은 한 포장마차에는

라면(일본식 발음 라멘)을 먹으려는 사람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람들 중에는 안도 모모후쿠도 끼어있었다.

직장을 잃은 뒤 안도는 장기간 보관해도 원래의 맛을 살릴 수 있는

국수를 대량 생산해 사업화할 생각을 했다.

거의 10년 동안 국수 개발에 매달린 사업이

생각처럼 잘 진행되지 않았다.

끝내 모든 돈을 날려버린 안도는

나이도 이미 40대 중반에 접어 든 때였다.

좌절한 나머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기로 결심했다.

죽기 전 마지막으로 술이나 한잔하자며

포장마차를 찾았다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그곳에서 포장마차주인이 음식 만드는 모습을 보던 안도는

어묵에 밀가루를 입혀 기름에 튀기는 모습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래서 일본인들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라면을

집에서 간단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해 보자고 나섰다.

그가 개발한 방법은 포장마차에서 힌트를 얻었던 기름에 튀기는 것이었다.

기름에 튀겨 건조시키는 유열건조법이다.

이와 함께 면에 넣어서 맛을 낼 수 있는 건조 스프로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1958년 건조시킨 면과 스프에

뜨거운 물을 넣기만 하면 라면을 먹을 수 있는

‘치킨라면’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판매가격이었다.

한 봉지에 당시 가격으로 35엔이었으므로

우동 한 그릇에 6엔이던 시절이다 보니

식품도매업자들이 난감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안도는 당시 폭발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하던

텔레비전에 광고를 내보냈다.

게다가 당시 일분에서도 서양식 슈퍼마켓이 도입되어

유통방식이 바뀌기 시작되고 있던 참이었다.

무게가 가볍고 보존성이 뛰어난 치킨라면은

슈퍼마켓에 안성마춤인 식품이었던 셈이다.

이렇게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일까?

치킨라면은 판매를 시작한지 6개월 만에

1,300만개 팔리는 대 히트 상품이 되었다.

이렇듯 라면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당연히 라면 생산 업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안도가 라면 제조 방법을 특허로 등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도 쉽게 라면을 만들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라면을 처음 생산한 것은 1963년이다. 경

쟁이 치열한 일본 라면업계에서 우리에게

라면 제조 기술을 이전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1인당 라면 소비량이 세계 최고지만

라면이 처음 국내에 선보였을 때는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은 밀가루 음식에 익숙하지도 않았고,

무엇보다도 값도 싼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최초의 라면은 가격이 10원으로,

당시 식당에서 사 먹는 백반이 30원이었으니

일반 대중에게 쉽게 어필할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부족한 쌀을 아끼기 위한 정부의 혼분식 장려 정책 덕분으로

라면이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느끼한 국물을 보완하기 위해

고춧가루를 이용한 수프가 개발되었고

한끼 식사에 맞게 개당 함량도 다소 키운 덕분에

라면소비가 촉진되었다.

우리는 라면이라고 하면 인스턴트 라면부터 떠올리지만

라면은 사실 생라면을 기름에 튀기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생라면은 어디서 비롯된 음식일까?

일반적으로 생라면의 뿌리는 중국으로 보고 있다.

1870년대, 요코하마의 부두에서 일하던

화교 노동자들이 먹었던 국수를 원조로 본다.

이들이 고향에서 먹던 ‘라몐(拉麵)’이

일본의 생 ‘라멘(らめん)’의 뿌리라고 하는데,

라몐이란 글자 의미 그대로 수타국수다.

 

안도는 1971년도에 발포 스티렌 수지 용기에

라면을 넣어 포장한 컵라면을 개발했다.

뜨거운 물을 붓기만 하면 곧바로 먹을 수 있었다.

그 당시 막 생겨난 긴자의 보행자 천국에서

젊은이들을 상대로 직접 판매했으며

걸어가면서 컵라면을 먹는 컨셉으로

광고를 내보내어 다시 한 번 빅히트를 치게 되었다.

이렇듯 안도는 일반적인 조리방식에서

아이디어에서 얻었을 뿐만 아니라

시류를 잘 탔음은 물론

언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줄 앎으로써

40대 중반이후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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