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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과 같은 분말건조커피가 만들어진 과정과 유행하게 된 배경

by 허슬똑띠 2022.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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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콩은 10세기 에티오피아에서 재배되기 시작하여

16세기에 유럽으로 소개되었으며,

1600년대 중반에는 미국에서 매우 대중적인 음료가 되었다.

그러나 볶은 커피콩으로부터 커피를 우려내는 것은

시간이 많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그러나 인스턴트커피는 로부스타나

저 품질의 아라비카 원두에서 커피 원액을 추출하고,

커피 원액을 원심분리기로 돌려 불순물을 제거하고,

열풍에 건조시켜 분말 형태로 만든다.

마지막 건조과정에서 풍미가 달라지기 때문에

동결건조 같이 열을 가하지 않는 건조법이 대중적이다.

 

우리나라에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주둔한 주한미군을 통해

인스턴트커피가 널리 퍼졌다.

당시 대다수의 한국인에겐 커피가 생소한 음료였기 때문에,

살면서 맛본 커피라고는 인스턴트커피가 전부인줄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커피믹스라는 봉지커피를 개발하여

전 세계적으로 선호하는 제품을 내놓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하였다.

인스턴트커피하면 일본을 빼놓을 수 없다.

일본에서 맨 처음 탄생했기 때문이다.

일본으로 커피가 전래된 때는 17세기 초로 매우 빠르다.

나가시키의 데지마지역에 들어온 커피는

그 독특한 향과 위장에 줗다는 소문으로 인해

초기에는 그럭저럭 퍼져나갔다.

하지만 몇 가지 이유로 거의 300년간

전통적인 차 문화에 눌려 대중화되지 못했다.

커피는 당시만 해도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고급식품이었다는 점 그리고 커피를 우려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독특한 기구가 필요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래서 특별한 날에 가끔씩 맛보는 그런 음료에 지나지 않았다.

 

한데 1800년대 말에 이러한 커피에 매료된 한 남성이 있었다.

이름이 가토 사토리라는 것 외에

언제 어디서 태어났고 어떤 경력의 소유자인지

잘 알려진 바가 없다고 한다.

어느 자료에는 그가 화학자였다고 되어있으나

사실여부는 알 수 없다.

어느 자료에서는

커피를 대중적인 음료수의 지위에 올려놓은

인스턴트커피를 개발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관한 확실한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가 개발한 인스턴트커피가 후에 널리 대중화 될 수 있었던 것은

독특한 기구를 사용하여 여러 절차를 거친 뒤 만들어내는

기존커피의 제조절차를 대폭 생략시켰기 때문이었다.

본인이 '산카'라고 불렀던 카토의 커피는

커피콩과 물로 만든 농축 용액을 가루 형태로 건조시켜

뜨거운 물에 쉽게 용해되도록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는 크게 각광받지 못했다.

그의 개발품이 틀림없이 히트할 것이라는 자신감에 차있던 그는

실망하지 않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여기까지가 그의 일본 내 활동내용이다.

가토는 1901년 뉴욕에서 열린 박람회에서

Soluble(가용성)커피라는 이름으로 인스턴트커피를 출품했는데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그로부터 몇 년 후인 1909년도에

조지 콘스탄트 워싱턴(미국초대대통령과 이름이 같다)이라는 사람이

가토의 제조법으로 특허를 출원했다고 한다.

어떤 자료에는 다르게 나와 있다.

1909년 벨기에 출신 화학자 조지 워싱턴은

과테말라에 거주하던 중

커피포트에서 분출되어 형성된 커피 건조물에서 영감을 얻어

'레드 E 커피'라는 브랜드로

대량 생산된 커피를 시장에 출시하였다는 것이다. 어느 것이 정확한 것인지는 검증되지 않았다.

이후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게 인스턴트커피의 대중회를 이끄는 계기가 되었다.

왜냐하면 커피가 군용보급품에 포함되었고

이를 즐겨 마셨던 군인들이 사회에 나오면서

그 맛을 잊지 않고 찾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즈음에 가토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이후 스위스의 네슬레사가 네스카페라는 상표로

세계시장에 진출하였는데 일본에는 1960년도에 진출했다.

건조기술이 발전하면서 냉동건조방식으로 이어져

향과 맛이 더욱 오랜 동안 보존가능하게 되었다.

 

그런데 세계 최초로 세기의 대 발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가토의 행동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왜 그가 특허를 획득하지 못했느냐는 것이다.

그가 특허에 대한 지식이 없었기 때문일까?

그럴 가능성이 있기는 하지만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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