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비즈 & 테크

점(占)으로 흥해서 점(占)으로 망한 한보그룹 흥망사

by 허슬똑띠 2022. 2. 6.
728x90
반응형

세무공무원이었던 정태수는

점쟁이의 말을 듣고 사업을 시작하였고

점쟁이의 조언에 따라 새로운 대규모 사업을 시작했다가 쫄딱 망한,

그야말로 점으로 흥해서 점으로 망한 기업이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1923년생인 정태수 회장의 힘은

바로 강력한 로비력이었다.

수단은 목적을 합리화한다는 논리를

현실에서 실천에 옮긴 대표적인 기업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러니 돈으로 되지 않는 것은 없다고 말 할 정도였다.

 

정태수 회장이 초기에 사업의 기반을

어떻게 닦았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전 재산을 털어서 시작한 광산업에서 큰돈을 벌었고

1974년에 회사를 창립해서

이듬해인 1975년에 영등포구 구로동에

영화아파트 172가구를 건립하면서

건설업에 뛰어들었다는 정도일 뿐이다.

가만히 보면 두 가지 사업 모두

사업 중에서도 투기, 즉 베팅성격이 강한 업종들이다.

그런 그가 재벌로 등극하는데 일등 공신 노릇을 한 것이 있다.

바로 은마아파트이다.

그는 강남구 대치동의 쓸모없는 유수부지 7만여 평을 매입해서

당시 단일 물량으로 최대 규모였던 2,200세대를

은마타운이라는 이름으로 분양하면서

어마어마하게 큰돈을 만지게 된다.

이 당시 그는 건설자금을 대출받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은행지점장실에 살았다는 얘기도 있다.

그 대출이 성공하여 결국 분양대박까지 이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은마아파트

 

은마타운을 지을 때 웃지 못 할 일들도 있었다.

1978년 무렵 건설경기가 별로 좋지 않기도 했지만

아파트건설을 담당한 한보주택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 때문에

건자재 상인들은 현금을 주지 않으면

건자재 납품을 하지 않으려했다고 한다.

그러자 한보주택 자재부직원들이 나서서

이렇게 설득했다는 것이다.

현장에 자재를 싣고 가서 현금결제가 되지 않으면

도로 가져가면 되지 않느냐고 하여

간신히 건자재상인들을 현장으로 인도하게 되었다.

하지만 막상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건자재상인들이 손쓸 새도 없이

현장직원들이 자재들을 들쳐 업고 현장으로 가버리고 말았다.

결국 건자재 상인들은 돈을 한 푼도 받지 못한 채

빈 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한보가 어떤 방식으로 커왔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태수는 여세를 몰아서 1979년에는

초석건설을 인수하여 한보종합건설로 상호를 변경하고

해외건설에 뛰어들었고

이후 주택, 상사, 종합건설, 목재, 탄광, 상가 등으로

계열기업을 확장해갔다.

골프장뿐만 아니라

은행관리업체였던 태화방직을 인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부실기업을 인수해서 급성장해온 대부분의 재벌처럼

한보그룹의 재무구조는 항상 취약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한보철강, 한보주택, 한보탄광 등 3개 주력 기업을 바탕으로

계열사를 확장해갔지만

한보철강이 남기는 수익을 제외하면

여타 계열사들의 재무구조는 열악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한보그룹로고

이후 정태수회장은 수서비리를 비롯한

여러 가지 비리사건에 연루되었고

중도에 그룹 경영에서 잠시 물러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외환위기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인물로 각인되었다.

1997년 1월 23일 한보철강(현 현대제철)의 부도에 이어서

4월에는 삼미그룹, 5월에는 대동주책

그리고 7월에는 기아그룹 등의 연쇄부도가 발생함으로써

대한민국은 미증유의 경험인

IMF 관리체제를 향해 치닫게 되었다.

그런 발걸음에 스타트를 끊은 재벌이 한보그룹이다.

1997년 1월 23일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며

부도에 이른 한보철강은

그즈음 열연강판 시장에 참여하기 위해

제철소건립에 5조원 이상의 자금을 쏟아 부은 상태였다.

당시 세계 철강 시장이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시점에서

한보철강이 검증받지 못한 박슬레브 캐스팅 방식에 의해

열연강판 시장에 진출한다는 발표는

전문가들 사이에 많은 의구심을 불러 일으켰다.

철강업계에는 한보의 경영능력이나 자금능력으로 미루어보아

무모한 투자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한보그룹은 이렇게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철강투자에도 불구하고 그 사이 계속해서

18개의 계열사를 설립하거나 인수하는 일을 벌였다.

이는 모두 남의 돈으로 계열사를 무리하게 확장한 것이다.

그러나 1996년 11월 외부차입금이

5조원에 이를 정도로 취약한 재무구조 때문에

제철소 완공 후에도 적자경영이 불가피할 것으로

뒤늦게 판단한 금융기관들이 기존 대출금의 회수에 나섬으로써

한보는 최종부도 처리되고 말았다.

부도 이후 한보철강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2004년 9월에 INI스틸=현대하이스코 컨소시엄에

인수됨으로써 정상화의 길로 들어섰다.

영속하는 기업은 장사와 다른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그 무엇의 핵심은

기업주가 갖는 기업에 대한 생각이자 믿음, 양심이다.

장사면 장사의 논리가 있다.

하지만 기업이라면 차원이 달라진다.

그저 돈이 된다고 해서

로비를 해서라도 무엇이든 되게 만든다면

이는 언젠가 그 비용을 톡톡히 지불할 수밖에 없다.

운 좋게도 마지막까지 그런 문제점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좋았으련만,

로비로 일어선 한보그룹은 결국

엄청난 비용을 국민들에게 떠넘기고

로비로 쓰러지고 만 것이다.

또 한 가지.

기업경영에 있어서의 근본은 정확한 사업전망분석이나

세세한 투자 및 자금계획수립이다.

그런데 그는 이러한 기본적 틀은 거의 도외시한 채

점이라는 개인의 길흉화복 전망에 의존했다는 점도

그룹경영에 치명타를 안겼다고 판단된다.

세무공무원으로 퇴직한 정태수는

"사업을 하면 잘 된다"는 점쟁이의 말을 듣고 창업했다고 한다.

그는 점쟁이의 말처럼 부동산과 아파트로

떼돈을 벌면서 승승장구하는 것 같았으나

쇳가루를 만져야 한다는 점쟁이의 조언을 받고

종합제철소 건설에 뛰어들었다가

점과는 다르게 그룹파산이라는 결말을 맞게 되었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