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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 죽음에 이르게 하는 그 무서운 중독성(제4화)

by 허슬똑띠 2022.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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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험블 (황량한 산골짝 언덕위의 황금성) 2

 

강원랜드로 가는 길은 더 이상 첩첩산중 속을 뚫고

요리조리 조심하며 가야하는 험난한 산길이 아니었다.

꼭 그럴 터인 건 아니겠지만 견강부회 식으로 갔다 붙인다면

확 트인 길이 타 지역 사람들을 마냥 카지노로

유혹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들이 사북지대로 들어섰을 때 어느덧 해거름 녘이 되었다.

태백은 물론 정선 역시 석탄 채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곳으로 한창 번성했을 때는 전국최대의 환락가를

이루었다고도 하는데 창준은 이것이 그대로

카지노로 연계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조차 들었다.

 

탄광지대였었다는 흔적은 가뭇없이 사라진 골짜기 언덕 위에

흡사 마법의 제왕이 사는 성처럼 우뚝 솟아있는

웅장한 건물이 저만치 보이기 시작했다.

혹자는 마귀의 성, 악마의 성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는 데

창준 역시 적절한 별칭인 듯 했다.

다른 한편으론 탐욕스런 사람들의 눈에는 저곳이

황금이 무진장 쌓여 있는 황금성으로 보이지 않을까?

창준은 문득 정선아리랑의 곡조가 떠오르자 세속의 질곡과

간난고초(艱難苦楚)를 높은 산과 깊은 계곡의 자연풍광에

날려 보내고자하는 절절한 흐느낌이 울리는 듯 했다.

아름다운 자연과는 대조적으로 비애와 한이 가슴 깊숙이

배어 있는 그런 흐름이, 세월이 그렇게 흐르고

자연의 모습조차 천지개벽하듯 변했건만

전혀 바뀐 것 같지 않음은 원초적으로

그런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의 땅이기 때문인가?

 

그 성의 모습이 갑자기 창준에게 어떤 기억을 떠올리게 했는지

어처구니없어 하는 표정을 지으며 불퉁스레 말을 꺼냈다.

“카지노 관련 책을 보니 카지노가 계속 운영되고 이익을 내는 건

고객보다 카지노가 유리하도록 고안되어 있기 때문이라는데,

당연한 거 아니겠어?

그러니 아무리 타짜라도 끝내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게임이란 거야!

이런 걸 아는지 모르는지…

여하튼 창성이 그 녀석 정말 바보 아냐?

타짜의 타에도 미치지 못하는 게 말이야.”

창준의 말은 분노 섞인 흥분과 조소, 그리고 한숨 등이

거칠게 반죽이 되어서인지 다소 톤이 높았다.

“형! 그래도 사람들은 한번쯤은 대박이 날 수도 있다는 그

런 희망 때문에 타죽는 줄도 모르고 불에 날아드는

부나비처럼 계속 날아드는 게 아닐까?”

창준의 격앙된 어조가 마음에 걸린 듯 창환은

조심스럽게 자기의 의견을 피력했다.

“창환이 네 말마따나 그 희망 아니, 아니지!

그건 단지 한여름 밤의 꿈과도 같은 그저

그런 환상에 불과할 뿐이라고 봐.

바로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마침내는 도로무익(徒勞無益)한 삶에 마침표를 찍게 되는 거지.”

 

한숨 속에 대화를 파묻고 두 사람이 탄 차는 그곳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는데 지나치는 도로주변에는

온갖 종류의 차량들이 틈새도 없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기가 막혔다.

그들이 성으로 향하는 입구를 통과할 때도 사방의 공터에

수많은 차들이 되는 대로 주차되어 있는 것을 보았었다.

당연히 주차장이 모자라 그곳에까지 세워둔 것이라 생각했었으나

별난 사연에 얽혀있는 차들이란 걸

창준이 자기의 차를 되찾을 때 알았다.

국내외 할 것 없이 흔히 그렇듯 카지노와 호텔이 함께 들어선

건물 주변의 주차장에 이르러 천신만고 끝에

빈자리를 찾아내어 차를 주차시켰다.

난생 처음 카지노라는 곳을 직접 경험하게 된 두 사람은

어리둥절하면서도 어떻게 해서든 동생을 찾아내야 한다는

조급한 심정으로 서둘렀다.

동생 수색을 위해 잠시 논의를 한 다음

입장권을 사들고 들어갔다.

 

요상한 소리를 내고 있는 수많은 기계들, 정신없이 이리저리

어수선하게 오가는 사람들로 내부는 어지럽게 돌아가고 있었다.

외부의 일상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세계였다.

창준은 ‘007카지노 로열’이라는 영화의 장면이 떠올라

‘이거야 원, 로열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머네.

정말 험블(humble)하기 그지없군!’이라는

중얼거림이 절로 나왔다.

분명 순수하게 즐기러 온 관광객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겠지만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딜러가 나누어주는 카드의 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상당수의 사람들은,

핏발선 눈으로 도박에 몰입하고 있는 창성의 험블한 모습

그이상도 그이하도 아니었다.

자정이 될 때까지 카지노내부를 샅샅이 뒤져보았으나

창성의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자 불현 듯

동생이 이곳에 오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은가하는

의구심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그러나 곧바로 그것을 떨쳐버렸다.

동생과 숨바꼭질하고 있음에 불과한 것이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두 사람은 일단 철수하고 다음 날 일시적으로

전원을 퇴장시키는 아침 6시 무렵 오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30분 정도 일찍 카지노 출입구에 도착한 두 사람은

노심초사하면서, 몰려나오는 사람들을 빠짐없이 훑어보았다.

즐거운 표정, 아쉬운 표정, 허탈한 표정 등의 온갖 군상들이

계속 그들 앞을 지나쳐 나갔다.

점차 사람들의 숫자가 줄어들기 시작하자

불안과 회의가 교차되면서 창준의 손을 떨게 만든 순간

갑자기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나왔다.

급히 창환이 창준의 앞을 가로막고 작은 소리로

오른편 구석을 보라고 했다.

그들 틈에 섞여 창성이 맥없이 터덜터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창준은 득달같이 달려가서 동생의 어깨를 잡아채어 끌어다

한편 구석에 앉혔다.

내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순간적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런 행동을 하게 만든 건지도 모른다.

창준은 동생 창성의 얼굴이 뻔뻔스럽기 그지없이 보여

일순간 터져 오르는 분노를 억제할 수 없었으나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따라 나오는 바람에 겨우 진정시킬 수 있었다.

 

창성을 다그쳐 창준의 차를 잡힌 집으로 가서

빌린 돈과 이자를 다 갚고 세 사람은 서울로 향했다.

창준 형제가 탄 차가 앞서고 그 뒤를 창환의 차가 뒤따랐다.

중도에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을 때도 그랬고

이후 집에 도착할 때까지 시종 두 사람은

철천지원수지간이나 되는 것처럼 서로 눈빛도 마주치지 않고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창준의 입에서는 무수한 말들이 한 움큼씩 뒤엉켜 있다가

마른 침을 삼킬 적마다 목안에 경련을 일으키곤 했다.

그 와중에서도 창준의 눈에 어제 올 때는 그다지 와 닿지 않았던

늦가을의 은은한 빛이 가슴 저리게 투영되면서

마음을 점차 차분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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