팻핑거의 저주는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다
팻핑거(Fat Finger)'는 '살이 찐, 뚱뚱한'의 뜻과 '손가락'이 합쳐 '굵은 손가락'을 지칭하는 말이다. 하지만 증권을 매매하는 사람의 손가락이 자판보다 굵어 가격 또는 주문량을 실수로 입력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름 자체는 재밌게 보이지만 주식, 채권 중개 업무를 하는 직원에게는 무서운 단어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실수가 큰 손실을 낳을 수도 있고 심지어 회사의 파산까지 불러올 수 있게 되어서이다. 계속해서 국내와 해외에서 있었던 팻핑거의 저주사례 내용을 알아보겠다.
케이프투자증권 순이익의 절반을 하루 만에 날리다.
케이프투자증권은 2008년 신생 증권사로서 라이센스를 받고 LIG손해보험의 자회사 'LIG투자증권'으로 설립되었다. 2015년 상반기, LIG손해보험이 KB금융지주에 인수되면서 KB금융지주의 손자회사가 되었다가 KB금융지주가 재매각을 추진하면서 2016년 상반기에 케이프인베스트먼트에 인수되었다. 케이프인베스트먼트의 모회사인 케이프는 선박 엔진 실린더 라이너를 제조하는 기업으로 사업 다각화 측면에서 증권업 진출을 모색해왔다. 2017년 상반기에 회사명을 케이프투자증권으로 변경하고 이베스트투자증권 인수전에 참여하였으나 인수에 실패하였다. 그해 하반기에 SK증권 인수전에 참여하였으나 역시 인수에 실패하였다. 연이은 증권사 인수 실패로 전략을 선회하여 기업공개(IPO)를 추진하고 있다.
한맥증권 사태 이후에도 국내 팻핑거 사례는 여러 차례 일어났다. 2018년에는 케이프투자증권의 직원이 코스피 200옵션을 이론가보다 20% 낮은 가격으로 주문한 것이다. 당시 시장에서는 미국 주가지수의 급락으로 풋옵션 가격이 상승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었다. 이에 추격 매도한 시장 참가자들도 거액의 손실을 보았다. 케이프투자증권은 이 사건으로 인해 60억 원 가량을 손해 보았다. 지난해 순익(150억원)의 41.3%에 상당하는 금액이었다. 다행히 파산은 면했지만, 그 해 순이익의 절반가량이 한 순간에 날아가버리는 부담으로 기업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았다.
삼성증권의 유령주식 사태
케이프투자증권 사태가 일어난 지 불과 두 달 뒤에는 삼성증권에서도 팻핑거 사고가 일어났다. 283만 주에 대한 조합원들에게 주 당 배당금 1,000원을 지급해야 하는데, 주식 1,000주로 지급해버린 것이다. 배당금 28억 원이 한 순간에 28억 주(약 100조 원)로 급등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100조 원 가량의 위조 주식이 직원의 통장으로 유통되었는데, 문제는 일부 일부 직원이 잘못 배당된 주식을 잽싸게 시장에 팔아치우면서 당일 삼성증권에서만 523만 주가 매물로 쏟아졌다. 삼성증권 주가는 장중 한때 12%까지 폭락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놀란 개인투자자들은 손절매에 나서면서 금전적으로 큰 피해를 봤다. 문제는 삼성증권이 28억 주에 달하는 ‘유령주식’을 발행했다는 점이다. 개인투자자들은 있지도 않은 주식이 발행되고 거래된 것은 법으로 금지한 ‘무차입 공매도’라고 봤다. 이 사건으로 이익을 본 직원 8명은 1년 또는 1년 6개월의 징역과 집행유예, 벌금형 등을 선고받았다.
도이체방크의 거액 오류송금
증권사와 같은 사고는 아니지만 이와 유사한 사고 사례도 있다. 도이체방크의 거액 송금 오류사건이다.
첫 번째는 2015년도에 발생한 사건인데, 도이체뱅크의 한 신입사원이 상사가 휴가를 간 사이 업무를 처리하다가 팻핑거 문제를 일으켰다. 고객사인 미국 헤지펀드에 60억 달러(약 6조 4000억 원)를 잘못 송금한 것인데. 천만다행으로 추후 금액을 되돌려 받을 수 있었다.
두 번째는 2018년에 일어난 사고이다. 37조 원을 실수로 송금했다가 수 분 만에 정정한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일일 담보 조정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유럽 파생상품거래소인 유렉스(EUREX) 계좌로 380억 유로(약 36조9천억 원)를 잘못 보냈던 것이다.
도이체방크는 대변인은 이번 일이 "운영 오류"에 따른 것이며, "수 분 안에 오류를 확인해 바로 잡았다"고 말했다. 380억 유로는 도이체방크의 시가총액보다 50억 달러(5조3천억 원) 많은 규모다. 이러한 오류 탓에 도이체방크는 또 한 번 신뢰도에 금이 가게 됐다. 도이체방크는 장기간 실적 부진으로 주가가 많이 하락한 가운데 존 크라이언 최고경영자(CEO)를 교체하기도 했다. 크라이언 CEO 재직 기간 도이체방크 주가는 반 토막 났었다.
잊을 만 하면 팻핑거의 저주로 주문 실수가 터진다. 2018년도의 케이프투자증권사태나 2012년 발생한 한맥투자증권과 같은 사고다.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면 해당 증권사는 거래상대방을 대상으로 부당이득금 반환소송을 제기하거나 거래 상재방에게 호소하는 식으로 자금을 회수하기도 한다. 국내의 경우는 소송을 제기하여 일부 승소를 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거래상대방이 외국인 투자자인 경우 손실 금액을 돌려받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미래에셋증권 직원이 선물 매수 주문을 하면서 소수점을 누르지 않는 실수를 한 사건이 그랬다. 직원 A씨가 주문 가격 ‘0.80원’을 ‘80원’으로 잘못 입력한 것을 알고도 동양증권(현 유안타증권) 등이 넣은 매도 주문 계약이 그대로 체결됐다. 미래에셋증권은 동양증권을 상대로 2011년 10월 부당이득 반환 소송을 냈다. 법원은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린 적이 있다. 또한 통상적으로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직원의 주문 실수로 거액의 손해를 입게 되면, 곧바로 구제 절차를 밟는다. '실수로 주문했으니 무효화 해달라'고 거래 상대방에 요청하는 것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이같은 요청을 되도록이면 받아주는 것이 관례로 통용되기는 한다. 하지만 증권거래처가 국내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일단 불미스러운 일이 터지면 한맥증권과 같은 경우처럼 외국투자자들에게는 거의 통하지 않는 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팻핑거의 저주를 피하는 게 최우선이며 이와 함께 시스템의 보완 역시 끊임없이 개선되어져야 할 것이다.
'비즈 & 테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치란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다 (0) | 2022.04.14 |
---|---|
200년의 전통을 지닌 은행의 운명을 쥐락펴락한 은행원 (0) | 2022.04.11 |
세일즈의 왕도 (0) | 2022.02.16 |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자동차를 만든다면? (0) | 2022.02.14 |
주식투자에서 유의해야 할 네번째 편향 ~ 최근성 편향 (0) | 2022.02.0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