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우리가 목적달성을 위해 집중하고 있을 때 예기치 않은 어려운 일을 만나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상황에 처할 때가 있지요.
이때 먼저 떠오르는 말이 ‘궁즉통’입니다. 이와 유사한 의미로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는 말도 있습니다. 다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에는 다소 부정적인 뜻이 담겨 있습니다.
즉 어떤 수단이나 방법으로라도 목적만 이루면 된다는 악바리 같은 의지가 함축되어 있는데 말인즉슨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의 성사를 위해서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음으로써 오버액션도 불사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성공하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엄청난 낭패를 당하여 예상했던 것 이상의 손실을 볼 수 있겠지요?
한데 제가 경험한 바로는 그것도 잘만 활용하면 좋은 결과를 이룰 수 있음을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긍즉통과 상통한 거죠.
10여년 전에 필리핀으로 혼자서 출장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일을 끝내면 홍콩을 경유해서 일본으로 가 마지막 임무를 수행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차 했습니다. 일본을 가려면 일본 비자를 받았어야 했는데 갑자기 떠나는 여행이라 미처 이를 챙기지 못한 것입니다. 순간 뜻하지 않은 낭패감으로 어찌할 바를 몰라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러다가 떠오르는 말이 있었습니다. 바로 모로 가도 일본만 가면 되는 것 아니냐는 거였죠.
숙소 자리에서 박차고 나와 곧장 필리핀 주재 일본 영사관으로 달려갔습니다. 영사관 직원은 한국 사람이 뜬금없이 일본 비자를 신청한다고 하니 어리둥절했습니다. 처음에는 규정 상 발급해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본으로 업무 차 꼭 들러야 하는데 서울에서 출발하기 전 깜빡 잊고 비자를 발급받지 못했다고 설명한 다음 매우 절박한 표정으로 그곳의 거래처와 상담하지 못하면 나는 목이 달아난다며 사정조로 말했습니다. 그러나 저를 상대했던 직원은 계속 규정만 들먹이며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안 되겠다 싶어 일본사람 특유의 약점을 파고들기로 했습니다. 바로 약자에는 강하지만 강자에는 약하다는 걸요. 그래서 다소 언성을 높여 만일 이 일이 성사되지 못하면 일차적으로 내가 날아가겠지만 이 일을 성사시키지 못한 일본회사 직원 역시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그러자 그 직원은 안으로 들어가 상사와 이야기 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결국 일본행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었습니다. 어찌되었든 원하는 비자를 손에 낳게 되니 마음의 여유가 생겨 마침 필리핀에서 업무를 마친 터라 태국으로 1박2일 여행까지 하고 나서 홍콩으로 날아갔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또 실수를 하는 바람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일을 마치고 홍콩 시내를 휙 둘러본 다음 호텔로 돌아와 항공사로 예약확인 전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미리 일본 직항 비행기 티켓을 컨펌하는 것을 잊고 있었기에 항공편이 취소된 상황이었습니다.
다시 위기가 닥쳐온 겁니다. 그래서 항공사를 물고 늘어져서 내일 꼭 일본으로 출발하지 않으면 목이 달아난다면서 사정했습니다. 그러지 항공사 직원은 직항 비행가는 없으나 서울을 경유하여 동경으로 가는 항공편 좌석이 딱 한 자리 남아있다고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순간 살았다는 생각으로 쾌재를 부르며 즉시 예약했습니다.
두 번씩이나 모로 가게 된 셈입니다.
그렇게 해서 서울을 경유하여 동경으로 날아갔는데 서울에서 잠시 기착하고 있던 중 탑승하는 곳에서 대기하면서 멀리 우리나라의 풍광을 바라보니 참 묘한 기분이 들더군요.
동경에서 일본회사 담당자와 업무를 성공적으로 마친 다음 시내 관광을 할 때였습니다. 필리핀에서 술을 마시고 나오다 소매치기를 당해 적지 않은 돈을 잃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계획에 없던 태국여행을 하면서 추가로 경비를 지출하다보니 달러 현금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필요한 것을 사면서 카드로 결제하면 되겠거니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웬만한 상점들은 대부분 현금결제를 원하고 있기 때문에 카드결제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지금도 일본에서는 현금결제를 선호하고 있다는데 당시에는 어떠했겠습니까? 선진국이기 때문에 카드결제가 보편화 되어 있으리라는 것 대단한 착각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꼭 사가지고 가려는 물품 역시 현금결제를 해야 했기에 여기에서 다시 모로 가는 길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동경에 있는 우리나라 은행 지점에 들러 그곳에서 엔화 현금서비를 받아 필요한 현금을 조달했던 겁니다.
이렇게 세 번 씩이나 모로 돌아가서 어쨌든 계획했던 일을 무사히 마치니 마치 개선장군이나 된 것 같은 느낌으로 귀국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 미국과 일본을 다시 여행할 일이 있었는데 이때의 실수가 미리 미리 챙기도록 해주었습니다. 그래도 그 때의 일은 저의 재미있는 추억거리로 남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해외여행 중 저와 같은 상황을 만났을 땐 참고하십시오.
이 글을 쓰다보니 BTS가 유엔에서 연설했던 말 중에서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어 적어봅니다.
“어제 실수했더라도 어제의 나도 나이고 오늘의 부족하고 실수하는 나도 나입니다. 어쩌면 내일의 나는 오늘보다 더 현명해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또한 나입니다. 이런 실수와 결함들 그건 모두 나이며 내 삶의 별자리에서 가장 밝은 별무리를 만듭니다. 어제의 나 오늘의 나.. 앞으로 내가 되고 미래의 나까지... 그 모두 있는 그대로...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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