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게이츠와 스티브잡스를 닮은 일론머스크의 성공원동력
1. ‘1달러프로젝트’의 배경
일론 머스크는 어릴 적부터 책을 많이 읽었다. 책을 통해 스스로 배우는 것에 익숙했고, 1981년 10살 되던 해에 코모도어 VIC-20라는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컴퓨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2살 때에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스스로 익혀 블래스터(Blastar)라는 베이직 기반의 비디오 게임을 만들었다. 이 게임은 머스크가 공상 과학 소설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가상공간 게임으로, PC와 사무 기술이라는 잡지 회사로부터 500달러를 받고 소스코드를 공개하기도 했다. 머스크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뛰어난 기억력을 가지고 있었고,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주변 친구들에게 소위 왕따를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10대 후반이 되자 그는 남아공을 떠나고 싶었다. 당시만 해도 흑백차별이 심하던 때라 흑인민족주의운동을 막기 위해 백인은 군대를 가야했다. 군대를 가고 싶지 않았던 그는 캐나다시민권을 가진 어머니 덕분에 캐나다로 이민 갈 수 있었다. 이렇게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떠나 캐나다로 이주한 머스크는 1989년 캐나다 온타리오 주 킹스턴에 있는 퀸스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우수한 성적을 받은 덕분에 1992년에 장학금을 받고 펜실베이니아 대학교로 편입했다. 머스크는 그 곳에서 경제학뿐만 아니라 물리학도 추가로 전공하였다. 24살이 되는 해인 1995년 머스크는 재료과학과 물리학 분야에서 스탠퍼드 대학 박사과정을 등록한 지 며칠도 지나지 않아 돌연 스탠퍼드 대학교를 자퇴하고 실리콘 밸리로 이주하게 된다. 남들은 입학하기도 어려워 쩔쩔매는데....
사업을 시작하기 전 머스크 역시 사람인지라 ‘사업을 하다 망하면 어쩌지?’ ‘그러고도 살 수 있을까?’ ‘그냥 좋은 직장에 들어가 편하게 사는 게 낫지 않을까?’하는 여러 가지 고민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퀸즈대학교를 다니던 시절 한 가지 실험을 진행한다. 일명 '1달러 프로젝트'라고 명명한 이것은 하루에 1달러만 가지고 먹고 살 수 있는지를 시험해 보는 것이었다. 마트에서 냉동 핫도그와 오렌지를 잔뜩 사와 한 달 내내 냉동 핫도그와 오렌지만 먹고 살았다. 그렇게 한 달을 지내고 보니 이러한 생활이 의외로 자신에게 별로 힘들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혹시나 사업을 하다가 망한다 해도 컴퓨터 한대와 한 달에 30달러만 있으면 평생 살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고 이후 자신 있게 사업에 뛰어들게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머스크의 사업수행능력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났다는 점도 크게 한몫했다고 여겨지는 사실이 있다는 점이다. 그는 학창시절에 이런 사업수완을 발휘해 학비는 물론 생활비도 벌었다. 예로 그는 큰 집을 빌린 다음 이를 10개 파트로 나누어 세를 줌으로써 자신이 내야할 월세보다 훨씬 많은 수입을 챙겼던 것이다. 어째든 실험을 통해 자신을 얻은 머스크는 95년 스탠포드대학에 들어갔다가 불과 이틀 만에 자퇴했다. 당시 닷컴열풍이 불면서 실리콘밸 리가 새로운 비즈니스 성지로 떠오르고 있었는데 머스크 역시 하루라도 빨리 자신만의 사업을 시작하는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빌게이츠나 애플의 스티브잡스의 창업 전 행태와 유사하다.
2. 성장과정 및 성공스토리
1995년, 일론 머스크와 그의 형제 킴벌 머스크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지역 정보 제공 시스템인 Zip2을 창업했다. 그들은 뉴욕 타임즈, 시카고 트리뷴과 같은 신문사들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했고, 4년 후인 1999년 컴퓨터 제조업체 컴팩에 회사를 매각했다. 그로 인해 일론 머스크는 자신의 보유 지분인 7퍼센트에 해당하는 2200만 달러를 손에 쥐게 된다.
28세가 되던 1999년, Zip2를 매각한 일론 머스크는 1000만 달러를 투자해 X.com이라는 회사를 창업했다. X.com은 온라인으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로, 1년 만에 경쟁사였던 콘피니티를 인수합병하게 된다. 2년 뒤인 2001년도에, 머스크는 콘피니티의 일부였던 이메일을 통한 결제 서비스(페이팔)에 집중하기로 결정했고, 그에 따라 회사 이름도 X.com에서 페이팔로 바꾸게 된다. 그렇게 1년 후인 2002년(31)에 페이팔의 시가 총액은 6000만 달러를 웃돌았고, 눈독을 들이던 온라인 쇼핑몰 이베이가 페이팔을 15억 달러에 인수하게 된다. 그로 인해 일론 머스크는 1억 6천5백만 달러를 거머쥐게 되었는데, 이 돈은 이후 머스크가 다른 회사들을 창업하는 기반이 된다. 이 때 그의 나이 31세였다.
그해 6월, 일론 머스크는 민간 우주 항공 기업인 스페이스X를 설립하였다. 그는 로켓 엔지니어인 톰 뮬러에게 로켓 추진 부서의 CTO(Chief Technology Officer)를 맡겼고, 자신은 CEO겸 다른 분야의 CTO를 맡게 된다. 초기에는 직원 수가 많지 않았지만 급격한 성장을 이루면서 2017년 4월에는 그 수가 약 6000명으로 급격히 증가한다. 머스크가 스페이스X를 설립하면서 세운 목표 중 하나는 우주선 발사 비용을 10분의 1로 줄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재활용 가능한 로켓 발사 시스템 개발을 진행하였고, 2015년에 최초로 1단 부스터를 지상에 착륙시키는 쾌거를 이루었다. 머스크의 또 다른 목표는 화성을 식민지화하여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로켓을 통해 사람을 화성까지 운송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개발하고 있는 로켓은 팰컨 헤비로, 2018년 2월 최초로 팰컨 헤비의 발사에 성공했고, 양쪽 1단 부스터를 모두 회수하는 데에 성공했으며, 그의 또 다른 회사인 테슬라의 로드스터를 우주로 보내는 데 성공했다.
테슬라는 2003년 마틴 에버하드와 마크 타페닝이 창업한 회사로, 2004년 일론 머스크가 투자자로 참여했고, 초기 창업자들이 회사를 떠나면서 일론 머스크가 CEO가 되어 지금까지 회사를 이끌고 있다. 일론 머스크는 테슬라를 통해 전기차는 느리다는 편견을 깨려고 노력했고, 2018년 현재에는 스포츠카 모델인 로드스터, 세단 모델인 모델 S, SUV 모델인 모델 X, 준중형 모델인 모델 3까지 나온 상태이다. 기존의 전기차에 비해 배터리 용량도 크고, 충전 속도도 빨라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게 되었고, 반 자율주행 기술을 포함해서 많은 첨단 기술들이 적용된 덕분에 대표 모델인 모델 S는 프리미엄 전기차 세단이다.
2015년 12월, 머스크는 비영리 인공지능 연구 기업인 오픈AI를 설립했다.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개발되고, 이용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이다. 2016년 12월에는 인간의 뇌와 컴퓨터의 연결을 연구하는 회사인 뉴럴링크를 공동 창업했다. 설립 목적은 인류 전체에 이익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의 인공지능 개발이라는 부분에서 오픈AI와 목적이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일론 머스크는 계속 승승장구하고 있다.
(사족)
하루라도 빨리 창업하고자 그 유명한 대학을 중퇴한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와 애플의 스티브잡스처럼 일론 머스크도 실리콘밸리가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사업을 시작하기위해 박사과정에 들어간 지 이틀 만에 그만두었다. 그전에 이미 그는 사업이 망해도 하루일달러로 생활할 수 있음을 소위 '1달러프로젝트'로 검증을 함으로써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최소화했었다. 이는 30세 나이에 금융회사부사장으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던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가 어려운 창업의 결단을 내리기 전 터득한 '후회최소화의 법칙'에 따랐던 것과 유사하다.
일론 머스크를 비롯한 이들은 모두 다 유사한 공통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스타트업을 하고자 한다면, 아니 꼭 창업이 아니더라도 어떠한 일의 변화에 대한 새로운 결단을 내려야하는 경우에, 일론을 비롯한 성공스토리 신화의 주인공들이 어떤 과정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거쳤는지 다시금 살펴볼 필요가 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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